승화후(承化侯) 왕온(王溫)은 대몽 항전기에 항몽전을 주도하였던 삼별초에 의하여 추대된 삼별초 진도 정부의 왕이다. 혈통상으로는 고려 현종의 아들인 평양공(平壤公) 왕기(王基)의 7대손에 해당한다. 강화도의 고려 정부가 1270년(원종 11) 개경으로 환도하자, 삼별초는 환도를 거부하고 반몽 항전의 지속을 주장하며 봉기하였다.
이때 삼별초 정부의 왕으로 옹립되어 6월 1일 강화도를 출발, 배중손과 함께 진도로 거점을 옮겨 용장성(龍藏城)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1271년 4월 용장성은 여몽연합군의 공격으로 함락되었다. 이때 성을 벗어나 급히 피신하던 중 홍다구에 의해 붙잡혀 아들 왕환(王桓)과 함께 살해되었다.
왕온은 몽골군에 합류하여 고려에 들어온 영녕공 왕준(王綧)의 형이다. 동생인 왕준은 진도 함락의 소란 속에 왕온의 목숨을 구하고자 노력하였지만, 홍복원의 아들 홍다구가 왕온을 고의로 먼저 참살하였다.
전라남도 진도군 의신면 침계리의 용장성에서 논수골로 가는 사이에 왕무덤재라는 고개가 있는데, 여기에 왕온의 것으로 전하는 무덤이 있다. 무덤의 크기는 지름 7m, 높이 2m이다. 봉분 앞 좌우에는 강화도의 능묘에서 볼 수 있는 고려시대 석인상 2구가 세워져 있어 조성 시기를 암시하고 있다. 1988년 12월 21일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왕온묘는 삼별초 관련 인물의 유적이라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삼별초의 지도부는 반역자로 간주되어 관련 유적이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왕온의 무덤이 확실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전왕온묘(傳王溫墓)로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