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의 제8대 왕, 현종의 후손으로, 영녕공에 봉해진 뒤 왕자로 가장하여 몽고에 볼모로 갔으나, 몽고 황제의 신임을 얻어 안무고려군민총관을 역임한 종실.
개설
생애 및 활동사항
1253년 몽고의 고려 침공계획을 눈치채고, 몽고사신이 고려에 오면 왕이나 태자 또는 안경공 왕창이 직접 맞아 호의를 베풀어 침해를 모면하라는 계책을 알려주었다. 그러나 최항(崔沆)이 듣지 않아 결국 몽고군이 쳐들어오게 되었다. 그 해 몽고의 야굴대왕(也窟大王)을 따라와 충주를 포위, 공격하였다. 이듬해에는 차라대(車羅大) · 홍복원(洪福源) 등과 함께 보현원에 진을 치고 머물렀다.
1255년에 다시 몽고 헌종의 명에 따라 차라대를 따라 고려에 쳐들어와 약 1년간 각지를 어지럽히고 개경을 위협했다. 이후 안무고려군민총관(安撫高麗軍民摠管)이 되어 2,000여 호를 하사받아 심주(瀋州)를 다스렸다. 1270년(원종 11) 임연(林衍)의 반란 때는 파병요청에 따라 원나라 세조의 명으로 강화상(康和尙) · 홍다구(洪茶丘) 등과 함께 군사를 거느리고 또 고려에 들어왔다.
인질로 원나라 동경(東京: 遼陽)에 우거(寓居)했을 때 총관(摠管) 홍복원이 불평이 많자 몽고황족 출신인 영녕공의 처가 황제에게 고해 홍복원을 죽였다. 이 일로 인해 홍복원의 아들인 홍다구와는 사이가 나빴는데, 뒷날 홍다구의 참소로 여러 차례 곤경을 겪었다.
원나라에 살면서 특히 충렬왕 때에는 왕이 원나라에 들어갈 때마다 왕옹(王雍)과 사공(司空) 왕희(王熙) 등 두 아들을 데리고 와 말을 바치고 왕을 알현하였다. 용모가 단아했고, 특히 말타기와 활쏘기를 잘했으며, 책을 많이 읽어 지략이 뛰어나고 대의에 통했다고 한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원사(元史)』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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