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승려인데 통제원(通制院)의 비(婢)와 간통하여 김백안을 낳았다. 낭장으로 있다가 뒤에 원나라에 들어가서 대성(臺省)을 거쳐 평장사가 되었고 원나라가 망하자 분사요심 관리(分司遼瀋官吏)가 되었다.
이때 기철(奇轍)의 아들인 새인첩목아(賽因帖木兒)가 우승(右丞) 합자파두(哈刺波豆), 참정(參政) 덕좌불화(德左不花) 등과 함께 원나라의 남은 무리들을 불러모아 원수를 갚는다는 명분하에 동녕부에 웅거하니 여기에 가담하였다.
이에 고려는 1370년에 동북면원수 이성계(李成桂), 서북면상원수 지용수(池龍壽), 부원수 양백연(楊伯淵) 등에게 명하여 동녕부를 치게 하였다. 그리하여 압록강 북쪽의 요성(遼城)이 함락될 때 포로가 되었는데, 송환 도중 안주에 이르렀을 때 언사가 불손하다 하여 주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