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광산(光山). 초명은 김지기(金之沂)이다. 부친은 참지정사(參知政事) 김련(金鍊)이며, 형은 찬성사(贊成事) 김지숙(金之淑)이다. 사위는 조연수(趙延壽)이다.
1302년(충렬왕 28) 사관의 수찬관을 거쳐 지내지(知內旨)가 되고, 이듬해 밀직우승지(密直右承旨)에 올랐다. 1305년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지냈으며, 1310년(충선왕 2)에는 검교재신(檢校宰臣)시절 여러 사람들이 봉록(俸祿)을 청하였다. 김도는 대부분 녹봉을 정지된 가운데 예외적으로 녹봉을 받은 8명 중에 한 사람이다. 뒤에 광산군(光山君)에 봉해졌다.
충렬왕 말기에 김원상(金元祥)이 충렬왕 부자 사이의 오해가 풀림에 따라 자신에게 화가 돌아올 것을 두려워하여 꾀를 써서 당시 우승지였던 김도에게 전선(銓選: 인사행정)을 넘겨주려 하였으나 끝내 사양하고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