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창궁 ()

고려시대사
유적
고려시대 개경의 서소문 안에 있었던 궁궐.
이칭
이칭
수령궁(壽寧宮)
유적
건립 시기
고려 전기
관련 국가
고려
관련 인물
우왕
내용 요약

수창궁은 고려시대 개경의 서소문 안에 있었던 궁궐이다. 개경 중심인 십자가 서북쪽에 있었다. 고려 현종, 인종, 명종 등이 본궐을 중수할 때 이곳에 머물렀다. 강도에서 개경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한동안 사용된 사례가 잘 보이지 않아서 원종∼충렬왕 대 사이에 폐허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381년(우왕 7)∼1384년(우왕 10)에 중수하였고, 창왕 즉위 후 잠시 수령궁으로 개칭한 적이 있었다. 우왕 대 중수된 이후로 수창궁은 조선 초까지 주요 궁궐로 활용되었다.

정의
고려시대 개경의 서소문 안에 있었던 궁궐.
건립 경위

고려시대 이궁(離宮)인 연경궁(延慶宮)과는 별도로 또 다른 이궁이자 별궁(別宮)을 짓기 위해 고려 전기에 수창궁(壽昌宮)을 건립하였다.

변천

수창궁은 연경궁과 함께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궁궐로, 개경 중심인 서소문 안 십자가(十字街) 서북쪽에 있었다. 고려 현종, 인종, 명종 등이 본궐을 중수할 때 이곳에 머물렀다. 이른 시기부터 활발히 활용되었으나, 강도(江都)에서 개경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한동안 사용된 사례가 잘 보이지 않아서 원종∼충렬왕 대 사이에 폐허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1297년(충렬왕 23) 충렬왕비 제국대장공주(齊國大長公主)를 위하여 몽골식 천막인 궁려(穹廬)를 설치하려고 했다는 점과 1370년(공민왕 19) 공민왕이 수창궁의 옛터에 궁궐을 새로 지으려고 했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수창궁은 1381년(우왕 7)∼1384년(우왕 10)에 중수하였고, 창왕 즉위 후 잠시 수령궁(壽寧宮)으로 개칭한 적이 있었다. 우왕 대 중수된 이후로 수창궁은 조선 초까지 주요 궁궐로 활용되어, 공양왕과 조선의 태조와 태종이 모두 이 궁에서 즉위하였다. 세종 대를 지나며 본래 모습을 잃은 것으로 추정된다.

형태와 특징

거란의 침입을 피해 피난을 갔던 현종이 1011년(현종 2) 2월 수창궁으로 환궁하였고, 1147년(의종 1)에 의종이 수창군 북문을 봉쇄하여 군소배(群小輩)의 출입을 엄금하였다. 1187년(명종 17) 1월에 추밀원(樞密院)에서 불이 번져 수창궁의 행랑 기둥 20여 개가 불타 버렸다.

1196년(명종 26) 4월에 수창궁 중서성문(中書省門)이 붕괴되었으며, 같은 해 8월에 명종이 수창궁을 떠나 연경궁으로 옮겼다. 1213년(강종 2) 8월에 강종이 수창궁 화평전(和平殿)에서 세상을 떠났다. 대몽 전쟁기인 1234년(고종 21) 11월에 고려 태조의 화상(畫像)을 수창궁에 봉안하였으며, 1250년(고종 37)~1251년(고종 38)에는 이곳에서 몽골 사신을 접대하기도 하였다.

원 간섭기인 1297년(충렬왕 23)에는 고려 세자〔훗날 충선왕〕가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使事) 최충소(崔冲紹)에게 명해 수창궁 터에 충렬왕비 제국대장공주가 기거할 궁려를 짓도록 하였는데, 당시 공사 독촉이 너무 심해 많은 사상자가 나기도 하였다.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제2차 침입 때 연경궁이 불에 타 다시 수창궁으로 공민왕이 옮겨 갔다. 1370년(공민왕 19) 8월에 공민왕이 수창궁 터에 궁궐을 다시 지을 것을 명하였다. 1381년 3월 우왕이 다시 중수할 것을 명하여 1384년에 드디어 수창궁 중건이 완료되었다.

의의 및 평가

수창궁은 고려의 대표적 별궁으로서 연경궁을 대신한 적이 많았다. 원종~충렬왕 대 잠시 폐허가 되었지만, 우왕 대 중수되었으며 조선 초기까지 주요 궁궐로 사용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김창현, 『고려 개경의 구조와 그 이념』(신서원, 2002)

논문

홍영의, 「고려시기 개경의 궁궐 조영과 운영」(『한국중세사연구』 28, 한국중세사학회,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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