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시대 별궁(別宮)의 하나인 수창궁(壽昌宮) 내에 여러 전각을 조성하면서 명인전도 건립되었다.
수창궁 내에 있었던 전각들 중 하나이다. 1132년(인종 10) 인종(仁宗)이 이곳에서 이자겸(李資謙)의 난 사후 처리에 관한 제서(制書)를 내렸으며, 1134년(인종 12) 인종이 이곳에서 한림학사(翰林學士) 김부의(金富儀)로부터 『 서경(書經)』 「열명(說命)」편에 대한 강론을 들었다. 1151년(의종 5) 의종(毅宗)은 간관(諫官)의 간쟁을 무마시키고자 이곳에서 매일 조회(朝會)를 보기도 하였다.
고려 인종 대 이후 국왕이 보살계(菩薩戒)를 받는다든가 인왕도량(仁王道場) 등 도량(道場)을 개설하는 등의 불교적 행사 및 태일신(太一神)에 대한 초제(醮祭)가 이곳에서 자주 열렸다. 충선왕(忠宣王) 초에는 한때 충렬왕(忠烈王)의 어진(御眞)을 봉안한 혼전(魂殿)으로 쓰이기도 하였다.
고려의 정궁인 연경궁(延慶宮)이 이자겸의 난으로 불에 탄 이후 정궁을 대신해 왔던 별궁인 수창궁 내에 있던 전각으로서, 조회, 불교 행사, 초제 설행, 어진 봉안 등의 역할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