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평안남도 대동군 부산면에 있는 고려 제17대 인종 당시 서경 임원역에 건설된 별궁.
건립 경위
묘청은 서경의 임원역(林原驛)이 땅의 생긴 모양이나 형세로 보아 음양가의 소위 대화세(大花勢)에 해당하는 곳이므로 이곳에 궁궐을 세우면 금나라가 스스로 항복해 올 것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36국이 모두 신하가 되어 천하를 병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하였다. 아울러 칭제건원(稱帝建元)도 주창하였다. 이러한 지덕쇠왕설에 입각한 천도론은 인종에게 상당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1128년(인종 6) 왕은 친히 서경으로 가서 재추(宰樞)들에게 묘청 · 백수한(白壽翰)과 더불어 터를 살피게 하였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궁궐 신축을 명하였다.
궁궐 공사가 혹한기 3개월 동안 진행된 탓에 백성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다. 그렇게 수축(修築)된 궁궐의 이름은 대화궁(大花宮)이었다. 이는 보통의 명당보다 훌륭하고 뛰어난 대명당(大明堂) · 대길지(大吉地)의 뜻을 지닌 대화세에 세워졌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그 위치가 『조선 고적 도보(朝鮮古蹟圖譜)』에는 평안남도 대동군 부산면 남궁리의 한 부분인 옛 지명 ‘신궁동(新宮洞)’ 내의 폐지(廢址)로 나타나 있다.
대궐 안에는 정전(正殿)인 건룡전(乾龍殿)과 팔성당(八聖堂)이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특히 이 팔성당은 종래 다른 이궁(離宮)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1131년(인종 9)에 세워졌으며, 백두악 태백선인실덕문수사리보살(白頭嶽太白仙人實德文殊師利菩薩) 등 팔신의 상(像)을 그려 모셨다. 이 팔성당의 설치 목적은 국가의 복리를 더하고 왕권을 안정시키는 데 있었다.
그러나 설치 이후에 하등의 상서로운 일은 나타나지 않고 오히려 왕이 서쪽으로 행차할 때마다 각종 불미스러운 사건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기상이변들도 속출하였다. 이 때문에 민심이 날로 흉흉해졌고, 묘청을 배척해야 한다는 요구들이 거세어졌다. 국자사업(國子司業) 임완(林完)은 민심을 현혹시키는 묘청을 속히 참수해 하늘과 민심을 달래라고 역설하였다. 또한, 권신 김부식(金富軾) 등도 간관(諫官)들과 함께 왕의 서경 행차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서경행의 중지를 간하였다.
이로써 풍수도참(風水圖讖)의 지덕쇠왕설에 의거해 서경천도운동(西京遷都運動)의 일환으로 세워진 대화궁은 그 의욕적인 수축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쓰이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결국 1135년(인종 13) 서경 세력을 중심으로 한 묘청의 난이 일어나면서 반란의 근거지로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
단행본
-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고연구실 편, 『한중일 중세도성-한국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18)
- 이병도, 『고려시대의 연구』(아세아문화사, 1980)
논문
- 박종덕, 「고려 인종대 서경천도론과 풍수지리사상」(『역사와 세계』 54, 효원사학회, 2018)
- 민현구, 「묘청 일파 서경천도론의 허와 실」(『한국사 시민강좌』 36, 일조각, 2005)
- 김당택, 「고려 인종조의 서경천도·칭제건원·금국정벌론과 김부식의 《삼국사기》 편찬」(『역사학보』 170, 역사학회, 2001)
- 강옥엽, 「인종대 서경천도론의 대두와 서경세력의 역할」(『사학연구』 55·56, 한국사학회, 1998)
- 池內宏, 「大花宮と所謂倭城」(『東洋學報』 9-2, 1919)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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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고려 시대에 둔, 재부(宰府)와 중추원을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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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집이나 다리, 방죽 따위의 헐어진 곳을 고쳐 짓거나 보수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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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우리나라 고적의 도판(圖版)을 모아 엮은 책. 낙랑 시대로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동안의 고적을 중심으로 각종 유물의 도판을 수록하였다. 조선 총독부의 후원 아래 일본 학자 세키노 다다스(關野貞) 등이 작성하고, 조선 총독부가 간행하였다. 15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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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고려 인종 때, 묘청을 중심으로 하여 도읍을 개경에서 서경으로 옮기려고 한 운동. 이 운동이 개경파인 문벌 귀족들의 반대로 실패하자, 묘청 등 서경파는 1135년에 서경을 거점으로 하여 묘청의 난을 일으켰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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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고려 인종 7년(1129)에 건축한 서경(西京) 대화신궁(大花新宮)의 정전(正殿).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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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고려 인종 13년(1135)에 묘청이 서경에서 일으킨 반란. 풍수지리설에 의거한 서경 천도 운동이 좌절되자 국호를 대위(大爲), 연호를 천개(天開)라 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약 일 년 만에 관군에게 진압되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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