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봉루

  • 역사
  • 유적
  • 고려 전기
  • 고려 후기
고려시대 개경의 본궐 안 회경전 남쪽에 있었던 누정.
유적/건물
  • 건립 시기고려 전기
  • 건축 양식누정
  • 소재지개성특별시
집필 및 수정
  • 집필 2021년
  • 홍영의 (국민대학교 교수)
  • 최종수정 2022년 10월 12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위봉루(威鳳樓)는 고려시대 개경의 본궐 안 회경전 남쪽에 있었던 누정이다. 문무백관과 백성들의 조하를 받거나 과거의 방을 내걸어 급제를 하사하는 등 경사스러운 일을 행하였다. 936년(태조 19) 9월에 태조가 후삼국 통일 후 처음 문무백관과 백성들의 조하를 받은 일에서 처음 등장한다. 958년(광종 9) 5월 광종이 과거를 시행하면서 위봉루에 행차하여 방을 붙이고 급제를 하사하였다. 1107년(예종 2) 12월에 예종이 이곳에 친림하여 윤관에게 부월을 주어 여진 정벌에 파견하였다.

정의

고려시대 개경의 본궐 안 회경전 남쪽에 있었던 누정.

건립경위

고려 전기 개경의 본궐(本闕) 안에 있던 회경전(會慶殿) 남쪽에 문루를 세우기 위해 위봉루를 건립하였다.

변천

고려 전기 개경의 본궐 안 회경전 남쪽에 있던 누정(樓亭)이다. 이곳에서 문무백관(文武百官)과 백성들의 조하(朝賀)를 받거나 과거의 방(榜)을 내걸어 급제를 하사하는 등 경사스러운 일을 많이 행하였다.

936년(태조 19) 9월 태조가 후삼국 통일 후 처음 문무백관과 백성들의 조하를 받은 일에서 첫 이름이 보인다. 958년(광종 9) 5월에는 광종이 후주(後周)에서 고려로 귀화한 쌍기(雙冀)의 건의를 받아들여 과거를 처음으로 실시하고 친히 위봉루에 거둥하여 방을 붙이고 최섬(崔暹) 등에게 급제를 하사하였다.

981년(성종 즉위년) 8월 성종이 이곳에서 대사면령을 내리고 문 · 무관을 1급씩 승진시켰다. 997년(목종 즉위년) 12월 목종이 이곳에 임어(臨御)하여 사면령을 내리고 효자와 순손(順孫)을 칭찬하고 장려하였으며, 누명을 쓰고 죄를 받은 이들의 죄를 씻어 주고 아프고 병든 자들을 구제하였다. 또한 문 · 무관과 승려들의 관등을 1급씩 올려 주고, 국내의 산천신령에게 모두 훈호(勳號)를 덧붙여 주었다.

1010년(현종 1) 11월에는 현종팔관회(八關會)를 다시 열고 친히 이곳으로 나아가 음악연주를 관람하였다. 한편, 1107년(예종 2) 12월에 예종이 이곳에 친림하여 윤관(尹瓘) · 오연총(吳延寵) 등 고려 삼군(三軍)의 장수에게 부월(斧鉞)을 내려 여진(女眞) 정벌에 파견하였다.

의의 및 평가

위봉루는 개경 본궐 안에 있던 대표적인 누정으로서, 문무백관의 조하, 과거의 설행, 대사면령 포고, 문 · 무관 승진, 팔관회의 설행, 고려 삼군의 출정식 등 국가의 중대사가 간혹 이곳에서 시행되었다.

참고문헌

  • 원전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단행본

  • - 김창현, 『고려 개경의 구조와 그 이념』(신서원, 2002)

  • 논문

  • - 홍영의, 「고려시기 개경의 궁궐 조영과 운영」(『한국중세사연구』 28, 한국중세사학회, 2010)

주석

  • 주1

    : 누각(樓閣)과 정자(亭子)를 아울러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2

    : 모든 문관과 무관. 우리말샘

  • 주3

    : 동지, 정조(正朝), 즉위, 탄일 따위의 경축일에 신하들이 조정에 나아가 임금에게 하례하던 일. 또는 그런 의식. 우리말샘

  • 주4

    : 통일 신라 말기의 신라, 후백제, 태봉을 통틀어 이르는 말. 우리말샘

  • 주5

    : 나라에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던 칭호. 우리말샘

  • 주6

    : 구석(九錫)의 하나. 생살권의 상징으로서 주던 작은 도끼와 큰 도끼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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