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기

  • 역사
  • 인물
  • 고려 전기
고려 전기에, 후주에서 귀화해 과거제도 설치를 건의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 사망 연도미상
  • 성별남성
  • 출생 연도미상
  • 출생지중국(후주) 산둥반도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박옥걸 (국방부전사편찬위원회,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고려 전기에, 후주에서 귀화해 과거제도 설치를 건의한 문신.

개설

본래 후주인(後周人)으로 산둥지방 칭저우(靑州)의 수령이던 쌍철(雙哲)의 아들이다. 후주에서 벼슬해 산둥반도[山東半島] 등저우[登州]에 있는 무승군(武勝軍)의 절도순관(節度巡官)·장사랑(將仕郎)·시대리평사(試大理評事)를 지냈다.

956년(광종 7) 후주의 봉책사(封冊使) 설문우(薛文遇)를 따라 고려에 왔다가 병이 나 머물게 되었다. 병이 나은 뒤 광종(光宗)의 눈에 들어 후주로부터 허락을 받은 뒤 원보(元甫)·한림학사(翰林學士)에 임명되었다. 958년 과거제도의 설치를 건의하였다.

959년에는 쌍철이 고려에 와서 좌승(佐丞)이 되었다. 아들 쌍기가 광종의 총애를 받는다는 말을 듣고 고려의 사신 왕긍(王兢)을 따라와 관직을 받은 것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958년 5월 처음으로 실시된 과거에서 지공거(知貢擧: 고려시대의 과거시험관)가 되었다. 이때 시(詩)·부(賦)·송(頌)·책(策)으로 시험을 치르게 했는데, 진사(進士) 갑과(甲科)에 최섬(崔暹)·진긍(晉兢) 등 2인과 명경과(明經科)에 3인, 복과(復科)에 2인을 선발하였다.

960년에 실시된 과거에서 지공거가 되어 최광범(崔光範)·서희(徐熙) 등 7인을 진사 갑과로 뽑고, 명경 1인, 의업(醫業) 3인을 뽑았다. 961년에 실시된 과거에서도 지공거가 되어 왕거(王擧) 등 7인을 진사 갑과로 뽑고 명경업에 1인을 뽑았다.

평가와 의의

최승로(崔承老)는 광종을 평하면서 “쌍기를 등용한 이후로는 문사(文士)를 높이고 중히 여겨 은례(恩禮)가 지나쳤다.”라고 하였다. 또한, 이제현(李齊賢)은 쌍기에 관해 “보탬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겉치레만 화려한 모습의 문(文)을 주창해 후세에 큰 폐단을 남겼다.”라고 하였다. 이것으로 보아 후주에서 닦은 경륜을 살려 광종의 개혁을 도왔던 쌍기의 활약이 당시 사람들에게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 - 『고려사(高麗史)』

  •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 「고려초 과거제도의 도입에 관한 소고」(강희웅, 『한국의 전통과 변천』, 고려대학교아세아문제연구소,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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