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소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부지밀직사사, 판도판서 권수찬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철원(鐵原)
주요 관직
부지밀직사사|판도판서 권수찬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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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고려후기 부지밀직사사, 판도판서 권수찬성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개설

본관은 철원(鐵原). 조부는 이부상서 최신윤(崔臣胤)이고, 아버지는 추밀원부사 최징(崔澄)이다. 시호는 영민(榮敏)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288년(충렬왕 14)에 회원방호사(會源防護使)에 임명되었다. 1297년에는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가 되어 세자(뒤의 충선왕)의 명령을 받들어 공주의 궁려(穹廬) 설치를 위한 수창궁(壽昌宮) 터 공사를 주관하였다. 당시 공사 독촉을 매우 심하게 하여 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하였다. 1298년에는 동지자정원사 행중경유수 개원부윤 과의군도지휘사(同知資政院事 行中京留守 開元府尹 果毅軍都指揮使)가 되었다.

1307년에는 판도판서 권수찬성사(版圖判書權授贊成事)로 승진되고, 충선왕이 즉위하자 동지자정원사 행중경유수 개원부윤 과의군도지휘사(同知資政院事行中京留守開元府尹果毅軍都指揮使)가 되었다.

당시 권신인 조인규(趙仁規)의 딸이 충선왕비가 되었는데, 이때 “조인규의 처가 신(神)과 무(巫)를 섬겨 왕으로 하여금 계국대장공주를 사랑하지 않고 그 딸을 사랑하도록 저주한다.”라는 익명의 투서로 조인규가 처벌될 때 사위인 최충소도 연루되어 공창(鞏昌)으로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씨족원류(氏族源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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