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지 염승익(廉承益)의 추천으로 경상도안렴사(慶尙道按廉使)가 되었으나, 재물을 많이 거두고 포악한 짓을 하다가 파면되었다.
그 뒤 다시 정랑이 되었으나 안렴사 시절 기생 때문에 정연(鄭延)을 죽인 사건이 드러나 해도(海島)에 유배되었다. 감찰시사(監察侍史)를 역임하고 1287년(충렬왕 13)에는 전라도 왕지별감(王旨別監)으로 공진(貢進)을 잘하여 판도총랑(版圖摠郎)에 올랐다.
이 때 충선왕이 세자로서 원나라에 가게 되었는데, 은 40근과 호피(虎皮) 20장을 바쳐 환심을 사려고 하다가 거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