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실과 관련된 중요한 사찰중 하나이다. 『고려사(高麗史)』에서 자주 언급되었는데, ‘홍원사(弘圓寺)’ 외에도 ‘홍원사(洪圓寺)’라고 표기하였다. 홍원사에 관한 『고려사』의 기록을 보면, “1090년(선종 7) 3월 23일 밤에 천둥과 번개가 크게 쳐서 신흥창(新興倉)에 화재가 나서 홍원사와 국청사(國淸寺) 두 절의 역(役)을 중지하였다”고 하였는데, 이는 홍원사가 이즈음에 창건되고 있었음을 말해 준다. 또한 “1101년(숙종 6) 2월 25일에 왕이 홍원사에 행차하여 대장당(大藏堂)과 구조당(九祖堂)의 낙성식을 거행하였다”고 했는데, 김부식이 지은 「영통사대각국사비명(靈通寺大覺國師碑銘)」을 보면 홍원사는 화엄종 계열의 사찰로서, 낙성식과 함께 대각국사 의천을 초빙하여 주석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구조당은 화엄 9조를 기리는 조사당으로서, 대각국사가 지향했던 독특한 화엄 조사 계열을 실현한 것이다. 대각국사는 ‘마명-용수-천친-불타-광통-제심(두순)-운화(지엄)-현수(법장)-청량(징관)’을 화엄 9조로 추앙해, 기존의 두순에서 시작되는 중국 조사들 앞에 인도와 중국의 화엄종 이전의 조사를 추가하는 새로운 조사관(祖師觀)을 세운 바 있다. 이후 홍원사는 국왕들이 찾는 곳이 되어 1121년(예종 16) 10월 21일에는 예종이 행차하였고, 1128년(인종 6) 3월 14일에는 인종이 행차하여 반승(飯僧)을 행하였다. 의종도 홍원사에 수차례 행차하였다. 1183년(명종 13)에는 화엄법회(華嚴法會)를 크게 열어 무신 난으로 죽은 여러 사람의 영혼을 천도하기도 하였다.
고려 때의 홍원사는 왕의 초상을 봉안한 진전(眞殿)사원으로서 산직장상(散職將相) 2인이 예속된 왕실의 중요 사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