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각국사비첩은 보각국사비명의 글씨를 탁본하여 만든 첩이다. 보각국사비는 고려의 승려 일연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군위 인각사에 세웠다. 비문의 전면은 민지가, 후면은 산립이 지었다. 문인 죽허가 왕희지의 글씨를 찾아 모아 새겨서 1295년(충렬왕 21)에 비를 세웠다. 후대에 왕희지의 글씨를 얻기 위해 이 비에 수많은 탁본이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비가 손상을 입어 현재 일부분만 남아 있다. 탁본 20여 종은 남아 있어 비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이 비첩은 원래 비의 한 줄을 여러 개로 나누어 떼어 붙여 첩(帖)으로 만든 것이다.
보각국사비는 고려 후기의 승려 일연(一然, 1206-1289)을 기념하여 세운 것으로 탑과 함께 군위 인각사(麟角寺)에 세웠다. 제액은 ‘普覺國師碑銘(보각국사비명)’이 2행, 행 3자씩 음각되어 있는데 안진경풍과 북위풍이 가미된 해서다. 비문은 전면은 민지(閔漬)가, 후면의 음기(陰記)는 산립(山立)이 짓고 문인 죽허(竹虛)가 서성(書聖)이라 불리는 왕희지(王羲之)의 글씨를 집자(集字 : 문헌에서 필요한 글자를 찾아 모음)하여 1295년( 충렬왕 21)에 세웠다.
이 때문에 후대에 왕희지의 글씨를 얻기 위해 수많은 탁본이 만들어졌고, 이 과정에서 비가 손상을 입어 현재는 일부분만 파손된 채 인각사에 남아 있다. 그러나 탁본이 20여 종 남아 있어 비의 전면은 전문(全文)을 알 수 있고 음기도 거의 내용을 알 수 있다. 이 보각국사비첩은 탁본의 원래의 형태를 그대로 전하지 않고 원비의 한 줄을 여러 개로 나누어 떼어 붙여 첩(帖)으로 만든 것이다.
전면은 37행에 1행 69자이며, 음기는 36행에 1행 71자로 추정된다. 중앙승가대학(中央僧伽大學)에서 발행한 《인각사보각국사비명첩 麟角寺普覺國師碑銘帖》에는 한국정신문화연구원본 · 박영돈(朴永弴)본 · 일본 천리대(天理大)본 · 전보삼(全寶三)본I ·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본 · 황수영(黃壽永)본 · 서울대학교 규장각(奎章閣)본 · 영남대학교 동빈문고(東濱文庫)본 · 고려대학교 화산문고(華山文庫)본 · 전보삼본Ⅱ · 대동금석첩(大東金石帖)본 · 국사편찬위원회본의 12종 탁본이 실려 있다. 이후에 간송문고(澗松文庫)본이 추가로 공개되었다.
내용에 논란이 많은 음기의 복원본으로 《인각사보각국사비명첩》에 실린 푸른마을회 복원본과 박영돈 복원본이 있다. 보각국사비명의 전면은 일연의 생애를 상세하게 서술하였고, 음기는 일연의 몇 가지 인연담에 이어 일연의 문도들을 나열하였다. 문도는 세 가지 부류로 나누어 전법(傳法)제자인 부법제덕(副法諸德)과 수법(受法)제자인 집사(執事)제자와 재가단월(在家檀越)인 경사대부(卿士大夫)로 분류하였다.
현재 복원된 자료에 따르면, 부법제덕은 대선사와 선사가 42인, 산림(山林)이 18인, 삼중(三重) 19인, 대선(大選) 19인, 입선(入選) 20인으로 모두 118인이고, 집사제자인 참사(慘事)가 54인이다. 제자 부류와 승계에 따라 현재 172인 정도의 문도 이름을 알 수 있는데, 선사와 산림 사이에 수좌(首座) 승계가 자리잡아야 하나 인원은 확실히 알 수 없다.
재가단월 중에서 2품 이상의 재추(宰樞:문무의 고관대작을 통틀어 일컬음)는 이장용(李藏用) · 홍자번(洪子藩) · 원부(元傅) · 송송례(宋松禮) · 임익(任翊) · 정가신(鄭可臣) · 김구(金坵) · 박항(朴恒) · 염승익(廉承益) · 김련(金璉) · 박송비(朴松庇) · 이응소(李應韶) · 김주정(金周鼎) · 장일(張鎰) · 주열(朱悅) · 최유엄(崔有淹) 등 16인이 있다.
3품으로는 재추인 박지량(朴之亮) · 나유(羅裕) · 민훤(閔萱) · 김군(金頵) · 이덕손(李德孫) · 공문백(貢文伯) · 오예(吳睿) · 정수기(鄭守祺) · 이영주(李英柱) · 김지(金砥) · 최녕(崔寧) · 최자혁(崔資爀) · 오한경(吳漢卿) · 유거(柳琚) 등 14인이 있으며, 4품 이하로는 9인 정도를 확인할 수 있다. 이들의 정치적 성향은 다양하여 무인정권을 무너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던 이장용 · 박송비 · 이덕손 · 주열 · 송송례 등도 있고, 원의 일본정벌에 참여하였던 홍자번 · 김주정 · 박항 · 박지량 · 나유 등도 있으며 삼별초 진압에 참여한 인물과 충렬왕대의 측근 무인, 충선왕의 개혁정치에 참여한 정가신 · 임익, 권세를 부려 탐학한 관리로 지목받은 이덕손 · 염승익 · 민훤 · 이영주 · 김원상 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