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9년(고종 46) 4월 승선으로 있으면서 직무를 소홀히 하여 관리들의 주계(奏啓)를 막고 들이지 않았다.
1260년(원종 1) 12월 추밀원부사(樞密院副使)가 되어 재추의 반열에 들었으며, 1262년 12월 지추밀원사 좌산기상시 태자빈객(知樞密院事左散騎常侍太子賓客)을 거쳐 다음해 12월 추밀원사(樞密院使)에 올랐다.
1264년 8월 박송비(朴松庇)가 파직되자 박송비를 대신하여 수사공 좌복야(守司空左僕射)가 되었으며, 그 뒤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