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복사(昌福寺)의 자세한 내력이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고려 후기인 1249년(고종 36)에 무인 집정자였던 진양공(晋陽公) 최우(崔瑀)가 이 사찰을 창건하고 자진원오국사(慈眞圓悟國師) 천영(天英, 1215~1286)을 주맹(主盟)으로 초빙하였음을 천영의 비문을 통해 살필 수 있을 뿐이다. 천영은 이듬해에 선원사(禪源社)의 주지가 되어 창복사를 떠났고, 1256년에는 수선사의 주지가 되었다. 창복사에는 최우의 부친인 최충헌의 진영(眞影)이 안치되어 있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