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고려후기 개경 승도의 난, 최우암살모의 등과 관련된 주모자.
생애 및 활동사항
이 해 거란군이 개경을 침범하자, 풍수지리설을 내세워 최충헌에게 후릉(厚陵: 강종의 능)의 개장(改葬)을 주장하였다. 곧, “현종이 안종(安宗: 현종의 부친)을 장사 지낸 후 경술년(현종 원년)에 거란군이 침입하였는데, 이제 그 곁에 후릉을 장사 지내자 다시 거란군이 침략해 왔다”고 하면서 속히 후릉을 개장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다.
1218년(고종 5) 정월에 지태사국사(知太史局事)로서 신력(新曆)을 올렸는데, 임의로 옛 법을 변경하였다고 하여 비판받았다. 당시 일관(日官)과 대간(臺諫)들이 그 잘못된 점을 알고 있었으나 최충헌을 두려워해 말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1219년(고종 6) 최충헌이 병들자 대장군 최준문, 상장군 지윤심, 장군 유송절과 함께 최충헌의 장남 최우(崔瑀, 崔怡)를 제거하고, 둘째 아들 최향(崔珦)을 후계자로 세우고자 모의하였다. 이들은 최우가 집권하게 되면 자신들이 실각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였다. 김덕명은 최우암살모의가 드러날 것을 노심초사하여, 동료들을 배반하고 최우에게 모든 사실을 고함으로써 거사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로 인하여 최우에 의해 최준문은 유배되었다가 죽임을 당하고, 지윤심 등도 먼 섬으로 유배되었다.
참고문헌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고려의 무인정권』(김당택, 국학자료원, 1999)
- 「최충헌 정권 연구」(김대중, 서강대학교 사학과 박사학위논문,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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