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신집권자 최충헌(崔忠獻)의 측근으로, 관직은 다봉(茶捧)이었다. 1211년(희종 7) 12월 희종(熙宗: 11811237, 재위 12041211)과 연결된 내시낭중(內侍郎中) 왕준명(王濬明)이 최충헌을 살해하려 한 음모사건에서 최충헌을 구한 인물 중 하나였다.
노영의는 최충헌을 배행하며 행정에 관한 일로 수창궁(壽昌宮)에 들어갔다가 왕준명 등이 사주한 승려들의 공격을 받고 생사의 위기에 처했다. 당시 중방(重房)에서 이러한 급보를 전해들은 상장군(上將軍) 김약진(金躍珍)과 최우(崔瑀)의 장인 지주사(知奏事) 정숙첨(鄭叔瞻)은 즉시 수창궁으로 들어가서 최충헌을 찾는 데 성공하고 노영의를 부축하였다. 한편 지유(指諭) 신선주(申宣胄)·기윤위(奇允偉) 등은 승려들과 서로 격렬히 싸웠다. 그러나 최충헌을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도방(都房) 6번(六番)은 모두 궁성(宮城) 밖에 모였으나 최충헌의 생사를 알지 못하여 허둥댔다. 이때 노영의가 궁궐 지붕 위에 올라가 “우리의 공(公)께서는 무사하다”라고 고함을 질러 도방을 수창궁으로 인도함으로써 승려들을 물리치고 최충헌을 궁궐 밖으로 구출하는 데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