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공의(郭公義)라고도 한다. 무신집권자 최충헌(崔忠獻)으로부터 비호를 받았던 인물이다.
1203년(신종 6) 7월 좌사낭중(左司郞中)으로 재직 당시 금나라에 천수절사(天壽節使)로 파견되었다. 성격이 탐욕스러워 이듬해인 1204년(신종 7)에 양광도 안찰사(楊廣道按察使)로 파견되었을 때 백성을 수탈했다. 그러나 최충헌의 오랜 바둑친구로서 예전부터 친근하였기 때문에 처벌받지 않았다. 1217년(고종 4) 4월 거란유종(契丹遺種: 僞遼國人)의 침입 때에는 5군(五軍) 중 전군(前軍)의 지병마사(知兵馬事)가 되어 전군병마사 최원세(崔元世)를 보좌하며 거란 침략군을 격퇴하는전공을 세웠으며, 그에 대한 포상으로 위위경(衛尉卿)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