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진보당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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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명산은 해방 이후 국군첩보대 소속 대북요원으로 활동한 군인이다. 상해에서 사업에 종사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했다. 이 무렵 코민테른 원동부 조선대표로 항일운동을 하고 있던 조봉암을 만났다. 해방 이후 신의주에 건국무역사를 차려 운영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남하였다. 1955년부터 대북첩보기관의 요원으로서 대북교역을 담당하는 등 ‘이중간첩’으로 활약하였다. 1956년 북한정권의 자금을 조봉암에게 제공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었고, 1958년 조봉암 등 간부들이 구속되었다. 1959년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되었고, 조봉암의 사형도 집행되었다.
양명산 (梁明山)
양명산은 해방 이후 국군첩보대 소속 대북요원으로 활동한 군인이다. 상해에서 사업에 종사하면서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독립운동 자금을 후원했다. 이 무렵 코민테른 원동부 조선대표로 항일운동을 하고 있던 조봉암을 만났다. 해방 이후 신의주에 건국무역사를 차려 운영하다가 한국전쟁 때 월남하였다. 1955년부터 대북첩보기관의 요원으로서 대북교역을 담당하는 등 ‘이중간첩’으로 활약하였다. 1956년 북한정권의 자금을 조봉암에게 제공하였다는 혐의로 체포되었고, 1958년 조봉암 등 간부들이 구속되었다. 1959년 사형이 확정되어 집행되었고, 조봉암의 사형도 집행되었다.
해방 이후 국회법제조사 국장, 법전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윤길중 (尹吉重)
해방 이후 국회법제조사 국장, 법전편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한 법조인.
이영근은 일제강점기 때, 국내외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여 통일조선연감 발행, 조선민족통일회의 창설, 통일일보 발간 등의 행보를 보이며 통일정책에 힘쓴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이다. 1919년에 출생하여 1990년에 사망했다. 1943년 만주를 중심으로 국내외를 왕래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58년 4월 일본으로 망명 후 조선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하고 조선신문을 창간했다. 1972년 9월 통일일보를 발간하였다. 1975년 9월 조총련 동포의 추석성묘단 고국방문을 성사시켰다. 1990년 정부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이영근 (李榮根)
이영근은 일제강점기 때, 국내외를 왕래하며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해방 이후, 일본으로 망명하여 통일조선연감 발행, 조선민족통일회의 창설, 통일일보 발간 등의 행보를 보이며 통일정책에 힘쓴 언론인·정치인·독립운동가이다. 1919년에 출생하여 1990년에 사망했다. 1943년 만주를 중심으로 국내외를 왕래하면서 독립운동을 전개했다. 1958년 4월 일본으로 망명 후 조선통일문제연구소를 설립하고 조선신문을 창간했다. 1972년 9월 통일일보를 발간하였다. 1975년 9월 조총련 동포의 추석성묘단 고국방문을 성사시켰다. 1990년 정부는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추서했다.
대검찰청 검사, 한국반공연맹 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국회프락치사건과 진보당사건 등을 담당하며 보수우익의 대표 인사로 불린 법조인·정치인.
오제도 (吳制道)
대검찰청 검사, 한국반공연맹 이사 등을 역임하였고, 국회프락치사건과 진보당사건 등을 담당하며 보수우익의 대표 인사로 불린 법조인·정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