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참최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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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해예송은 1659년(현종 즉위) 효종이 죽자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의 종류를 두고 일어났던 서인과 남인의 예절에 관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효종이 인조의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서인은 효종을 둘째로 인식하여 일 년을 입는 기년복을 주장하였고,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논의 끝에 기년복이 채택되었는데, 남인 윤선도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윤선도를 탄핵하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기해예송 (己亥禮訟)
기해예송은 1659년(현종 즉위) 효종이 죽자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의 종류를 두고 일어났던 서인과 남인의 예절에 관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효종이 인조의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서인은 효종을 둘째로 인식하여 일 년을 입는 기년복을 주장하였고,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논의 끝에 기년복이 채택되었는데, 남인 윤선도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윤선도를 탄핵하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이해상 내외 상복은 1970년 5월 이해상 내외가 영친왕 이은의 장례 때 착용했던 상복 일습이다. 굴건(屈巾), 건(巾), 수질(首絰), 최의(衰衣), 상(裳), 요질(腰紩), 중단(中單), 대수장군(大袖長裙), 행전(行纏)의 총 9점이다. 이해상은 고종의 사촌인 완순군 이재완의 아들인 이달용의 3남으로, 영왕과는 재종질 관계이다. 이해상과 신계완의 딸인 이남주가 경기여자고등학교 경운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전통 상복 중 착용자가 명확한 남녀 상복 일습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
이해상 내외 상복 (이해상 內外 喪服)
이해상 내외 상복은 1970년 5월 이해상 내외가 영친왕 이은의 장례 때 착용했던 상복 일습이다. 굴건(屈巾), 건(巾), 수질(首絰), 최의(衰衣), 상(裳), 요질(腰紩), 중단(中單), 대수장군(大袖長裙), 행전(行纏)의 총 9점이다. 이해상은 고종의 사촌인 완순군 이재완의 아들인 이달용의 3남으로, 영왕과는 재종질 관계이다. 이해상과 신계완의 딸인 이남주가 경기여자고등학교 경운박물관에 기증한 것으로 현재 남아있는 전통 상복 중 착용자가 명확한 남녀 상복 일습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