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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각산수도는 누각을 중심으로 주변의 자연경관이 그려진 산수화이다. 명승지의 경관을 조망하기 위하여 세워진 높은 누각이 주로 그려졌다. 악양루, 황학루, 등왕각 등을 그린 누각산수도들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누각산수도는 우리나라에서도 전해져 조선 초기 문청의 「누각산수도」, 이수문의 「악양루도」가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에 정선의 「동정악루도」, 김득신의 「동정추월도」 뿐만 아니라 계회도, 청화백자 문양으로도 그려졌다. 조선 후기 이후 남종화의 유입과 더불어 소박한 초가집을 즐겨 그렸던 원나라 예찬 식의 산수화가 유행하면서 누각산수도는 쇠퇴하였다.
누각산수도 (樓閣山水圖)
누각산수도는 누각을 중심으로 주변의 자연경관이 그려진 산수화이다. 명승지의 경관을 조망하기 위하여 세워진 높은 누각이 주로 그려졌다. 악양루, 황학루, 등왕각 등을 그린 누각산수도들이 전형적인 사례이다. 누각산수도는 우리나라에서도 전해져 조선 초기 문청의 「누각산수도」, 이수문의 「악양루도」가 알려져 있다. 조선 후기에 정선의 「동정악루도」, 김득신의 「동정추월도」 뿐만 아니라 계회도, 청화백자 문양으로도 그려졌다. 조선 후기 이후 남종화의 유입과 더불어 소박한 초가집을 즐겨 그렸던 원나라 예찬 식의 산수화가 유행하면서 누각산수도는 쇠퇴하였다.
김창숙은 조선 후기 『심산만초』, 『벽옹만초』, 『벽옹칠십삼년회상기』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정치인이다. 1879년(고종 16)에 출생하여 1962년에 사망했다.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이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청참오적소」를 올려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오적을 성토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작성하여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하였다. 광복 이후 정치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육영사업에 힘써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저서로는 『심산유고(心山遺稿)』가 있다.
김창숙 (金昌淑)
김창숙은 조선 후기 『심산만초』, 『벽옹만초』, 『벽옹칠십삼년회상기』 등을 저술한 유학자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정치인이다. 1879년(고종 16)에 출생하여 1962년에 사망했다. 자는 문좌(文佐), 호는 심산(心山)이다. 1905년(고종 42)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청참오적소」를 올려 이완용을 비롯한 매국오적을 성토하였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독립을 호소하는 진정서를 작성하여 파리 만국평화회의에 제출하였다. 광복 이후 정치에 깊이 관여하지 않고 육영사업에 힘써 성균관대학을 설립하고 초대 총장에 취임하였다. 저서로는 『심산유고(心山遺稿)』가 있다.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유림 (柳林)
유림은 일제강점기 임시정부 국무위원, 독립노농당 초대 당수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 어문학자, 아나키스트이다. 1898년 경북 안동 출생으로 경술국치 당시 손가락을 잘라 충군애국의 4자 혈서를 써서 독립운동에 헌신할 것을 맹세하였다. 1921년 이후 북경과 상해에서 신채호, 김규식, 여운형 등과 함께 활동하다가 1922년 아나키스트로 전향하였다. 김두봉, 신채호 등과 함께 『한글말본』, 『깊더조선말본』 등을 저술하였다. 해방 후 아나키즘 이념정당인 독립노농당을 결성해 당수에 취임하고 『노농신문』을 발간하였다.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1919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신채호가 조직한 청년학생들의 항일독립운동단체.
대한독립청년당 (大韓獨立靑年黨)
1919년 9월 중국 베이징에서 신채호가 조직한 청년학생들의 항일독립운동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