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파주_삼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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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恭陵)은 조선 8대 예종의 왕후인 장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장순왕후가 세자빈 시절 승하해 세자빈묘로 조성되었으며, 석실을 사용하고 난간석과 병풍석은 제작하지 않았다. 공릉으로 봉릉된 뒤에도 추가로 석물을 제작하지 않아 15세기 세자빈묘의 체제를 잘 유지하고 있다. 공릉은 사적으로 지정된 파주 삼릉(坡州 三陵) 중 가장 먼저 조성된 능이다.
공릉 (恭陵)
공릉(恭陵)은 조선 8대 예종의 왕후인 장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장순왕후가 세자빈 시절 승하해 세자빈묘로 조성되었으며, 석실을 사용하고 난간석과 병풍석은 제작하지 않았다. 공릉으로 봉릉된 뒤에도 추가로 석물을 제작하지 않아 15세기 세자빈묘의 체제를 잘 유지하고 있다. 공릉은 사적으로 지정된 파주 삼릉(坡州 三陵) 중 가장 먼저 조성된 능이다.
영릉(永陵)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조선 제21대 영조의 맏아들 추존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의 쌍릉이다. 1729년에 효장세자의 묘소로 건립되고, 1752년에 현빈이 안장되어 쌍분을 이루었다. 정조가 즉위하여 진종과 효순왕후로 추존하고 영릉으로 격상되었으나, 돌거리를 추가로 조성하지 않아 여전히 세자묘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장순왕후의 공릉과 공혜왕후의 순릉과 같은 능역을 형성하여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파주 삼릉’이라 불린다.
영릉 (永陵)
영릉(永陵)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조선 제21대 영조의 맏아들 추존 진종과 효순왕후 조씨의 쌍릉이다. 1729년에 효장세자의 묘소로 건립되고, 1752년에 현빈이 안장되어 쌍분을 이루었다. 정조가 즉위하여 진종과 효순왕후로 추존하고 영릉으로 격상되었으나, 돌거리를 추가로 조성하지 않아 여전히 세자묘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장순왕후의 공릉과 공혜왕후의 순릉과 같은 능역을 형성하여 사적으로 지정되었으며, ‘파주 삼릉’이라 불린다.
순릉(順陵)은 조선 성종의 비 공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공혜왕후는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넷째 딸이며, 그 언니가 예종의 비 장순왕후이다. 1648년 순릉 석인상들이 파손되자 석물의 표면 전체를 깎아 냈는데, 얼굴은 17세기의 형태로 바꾸었고 의복은 기존의 15세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적 파주 삼릉에 있다.
순릉 (順陵)
순릉(順陵)은 조선 성종의 비 공혜왕후 청주한씨의 능이다. 공혜왕후는 상당부원군 한명회의 넷째 딸이며, 그 언니가 예종의 비 장순왕후이다. 1648년 순릉 석인상들이 파손되자 석물의 표면 전체를 깎아 냈는데, 얼굴은 17세기의 형태로 바꾸었고 의복은 기존의 15세기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사적 파주 삼릉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