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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원성(來遠城)은 991년(성종 10)경 거란(契丹)이 압록강 가에 쌓은 성곽이다. 내원성은 압록강의 검동도(黔同島)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려와 거란이 만나는 최전방에 위치한 요충지이다. 이 성은 고려와 거란 양국의 갈등이 고조될 때는 고려를 침입하기 위한 전진 기지 역할을 담당했으며, 평화 시기에는 양국의 문서를 주고받는 통로 역할을 담당하였다.
내원성 (來遠城)
내원성(來遠城)은 991년(성종 10)경 거란(契丹)이 압록강 가에 쌓은 성곽이다. 내원성은 압록강의 검동도(黔同島)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고려와 거란이 만나는 최전방에 위치한 요충지이다. 이 성은 고려와 거란 양국의 갈등이 고조될 때는 고려를 침입하기 위한 전진 기지 역할을 담당했으며, 평화 시기에는 양국의 문서를 주고받는 통로 역할을 담당하였다.
김인존은 고려 전기에, 비서감, 병부, 예부, 호부상서, 익성동덕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신라 상대등 김주원의 후손으로 과거에 급제해 선종·헌종·숙종 3대에 걸쳐 내시직에 종사하였다. 요나라 사신의 접대를 맡을 만큼 시를 잘 지었고 임금의 조서와 유시문을 많이 작성하였다. 『해동비록』과 『시정책요』 저술에 참여하였으며 『정관정요』에 주석을 붙였다. 예종 때에 추진된 여진 정벌을 극력 반대하였고 여진에게 동북 9성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자겸의 난이 평정된 후 정지상·김안 등이 송나라와 협력해 금나라를 치자고 주장했으나 반대하였다.
김인존 (金仁存)
김인존은 고려 전기에, 비서감, 병부, 예부, 호부상서, 익성동덕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신라 상대등 김주원의 후손으로 과거에 급제해 선종·헌종·숙종 3대에 걸쳐 내시직에 종사하였다. 요나라 사신의 접대를 맡을 만큼 시를 잘 지었고 임금의 조서와 유시문을 많이 작성하였다. 『해동비록』과 『시정책요』 저술에 참여하였으며 『정관정요』에 주석을 붙였다. 예종 때에 추진된 여진 정벌을 극력 반대하였고 여진에게 동북 9성을 반환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자겸의 난이 평정된 후 정지상·김안 등이 송나라와 협력해 금나라를 치자고 주장했으나 반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