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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적은 조선전기 예조판서, 형조판서,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491년(성종 22)에 태어나 1553년(명종 8)에 사망했다.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나 7년간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복직 후 좌찬성에 이르렀으나 을사사화가 발생하여 추국하는 역할이 주어지자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양재역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유배됐고 유배지에서 많은 저술을 남긴 후 세상을 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주희의 주리론적 입장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에게 전해준 인물이다.
이언적 (李彦迪)
이언적은 조선전기 예조판서, 형조판서, 좌찬성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학자이다. 1491년(성종 22)에 태어나 1553년(명종 8)에 사망했다.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가 관직에서 쫓겨나 7년간 성리학 연구에 전념했다. 복직 후 좌찬성에 이르렀으나 을사사화가 발생하여 추국하는 역할이 주어지자 스스로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양재역벽서사건에 무고하게 연루되어 유배됐고 유배지에서 많은 저술을 남긴 후 세상을 떴다. 조선시대 성리학의 방향과 성격을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고, 주희의 주리론적 입장을 정통으로 확립하여 이황에게 전해준 인물이다.
1371년 진주목에서 개판(開板)하여 발간한 유학서. 관판본.
중용주자혹문 (中庸朱子或問)
1371년 진주목에서 개판(開板)하여 발간한 유학서. 관판본.
1371년 진주목에서 개판(開板)하여 발간한 유학서. 관판본.
중용주자혹문 (中庸朱子或問)
1371년 진주목에서 개판(開板)하여 발간한 유학서. 관판본.
송나라의 주희가 영종에게 진강(進講)한 『대학』의 내용을 수록한 유학서.
주자경연강의 (朱子經筵講義)
송나라의 주희가 영종에게 진강(進講)한 『대학』의 내용을 수록한 유학서.
『논맹혹문정의통고』는 주희가 편찬한 『논맹혹문』과 『논맹정의』를 송시열이 편찬하고 권상하가 간행한 주석서이다. 송시열이 이 저술을 편찬한 동기는 주희가 저술한 『논맹집주』와 여러 문인들과 질의한 『논맹혹문』 사이에 상충된 내용을 정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주희가 『논맹혹문』에서 인용한 인물들의 독자적인 견해를 모아 『논맹정의』를 정리함으로써 『논맹혹문』의 동일한 장절을 일관되게 이해하고, 이를 통하여 주희의 『논맹집주』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 세 저술은 상호간 논거가 되는 상보적 관계를 지닌다.
논맹혹문정의통고 (論孟或問精義通考)
『논맹혹문정의통고』는 주희가 편찬한 『논맹혹문』과 『논맹정의』를 송시열이 편찬하고 권상하가 간행한 주석서이다. 송시열이 이 저술을 편찬한 동기는 주희가 저술한 『논맹집주』와 여러 문인들과 질의한 『논맹혹문』 사이에 상충된 내용을 정합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그는 주희가 『논맹혹문』에서 인용한 인물들의 독자적인 견해를 모아 『논맹정의』를 정리함으로써 『논맹혹문』의 동일한 장절을 일관되게 이해하고, 이를 통하여 주희의 『논맹집주』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따라서 이 세 저술은 상호간 논거가 되는 상보적 관계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