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후고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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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예는 남북국시대 태봉국의 제1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다. 재위 기간은 901년~918년이다. 10여세 때 세달사에 출가하여 승려생활을 하다가 세력을 키워 901년 후고구려를 건국했다. 904년에 국호를 마진으로, 911년에 다시 태봉으로 바꾸었다. 한때 전국의 2/3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큰 세력을 떨쳤다. 광평성을 비롯한 여러 관부를 두어 국가체제를 정비했지만, 후반에 미륵신앙에 기반을 둔 신정적 전제주의 정치를 추구하다가 918년 6월에 왕건을 지지하던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등 4인의 정변으로 왕위에서 쫓겨났다.
궁예 (弓裔)
궁예는 남북국시대 태봉국의 제1대 왕이자 마지막 왕이다. 재위 기간은 901년~918년이다. 10여세 때 세달사에 출가하여 승려생활을 하다가 세력을 키워 901년 후고구려를 건국했다. 904년에 국호를 마진으로, 911년에 다시 태봉으로 바꾸었다. 한때 전국의 2/3 가량을 차지할 정도로 큰 세력을 떨쳤다. 광평성을 비롯한 여러 관부를 두어 국가체제를 정비했지만, 후반에 미륵신앙에 기반을 둔 신정적 전제주의 정치를 추구하다가 918년 6월에 왕건을 지지하던 홍유·배현경·신숭겸·복지겸 등 4인의 정변으로 왕위에서 쫓겨났다.
후삼국시대는 통일신라가 분열되어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를 이은 고려 등 3국이 정립하였던 900~936년 시기이다. 신라 말 호족의 대두와 농민 봉기로 인한 혼란 속에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901년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904년 마진, 911년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었다. 918년 궁예를 몰아낸 왕건은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다. 935년 견훤이 고려에 망명하였고, 신라의 경순왕도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를 정벌함으로써 통일을 이루었다. 후삼국 통일은 한국 민족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후삼국시대 (後三國時代)
후삼국시대는 통일신라가 분열되어 신라, 후백제, 후고구려를 이은 고려 등 3국이 정립하였던 900~936년 시기이다. 신라 말 호족의 대두와 농민 봉기로 인한 혼란 속에 900년 견훤이 후백제를 건국하였다. 901년 궁예가 후고구려를 건국하고 904년 마진, 911년 태봉으로 국호를 바꾸었다. 918년 궁예를 몰아낸 왕건은 국호를 고려라고 하였다. 935년 견훤이 고려에 망명하였고, 신라의 경순왕도 왕건에게 귀부하였다. 936년 왕건은 후백제를 정벌함으로써 통일을 이루었다. 후삼국 통일은 한국 민족의 형성에 기여하였다.
태봉은 후삼국 시대에 궁예가 세운 나라의 이름이다. 궁예는 901년에 고구려 계승 의식을 표방하면서 후고구려를 세웠다. 904년에 나라 이름을 마진으로 바꾸었다가 911년에 태봉으로 고쳤다. 궁예는 이때 연호도 수덕만세로 고쳤다가 914년에 다시 정개로 바꾸었으며, 미륵불을 자칭하면서 미륵관심법을 내세워 정적들을 제거하는 등 미륵신앙에 근거한 신정적 전제 정치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궁예의 신정적 전제 정치는 민심 이반을 불러왔고, 그 결과 왕건의 정변으로 멸망하였다.
태봉 (泰封)
태봉은 후삼국 시대에 궁예가 세운 나라의 이름이다. 궁예는 901년에 고구려 계승 의식을 표방하면서 후고구려를 세웠다. 904년에 나라 이름을 마진으로 바꾸었다가 911년에 태봉으로 고쳤다. 궁예는 이때 연호도 수덕만세로 고쳤다가 914년에 다시 정개로 바꾸었으며, 미륵불을 자칭하면서 미륵관심법을 내세워 정적들을 제거하는 등 미륵신앙에 근거한 신정적 전제 정치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궁예의 신정적 전제 정치는 민심 이반을 불러왔고, 그 결과 왕건의 정변으로 멸망하였다.
종간은 승려 출신으로, 태봉 말 소판(蘇判)의 지위에 있던 궁예의 측근 관리였다.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즉위한 직후 내군장군 은부와 함께 처형되었다. 종간이 간사하고 모함을 많이 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궁예 정권의 부당함을 부각시켜 고려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파악하기도 한다.
종간 (宗偘)
종간은 승려 출신으로, 태봉 말 소판(蘇判)의 지위에 있던 궁예의 측근 관리였다. 왕건이 궁예를 몰아내고 즉위한 직후 내군장군 은부와 함께 처형되었다. 종간이 간사하고 모함을 많이 하였다고 하는데, 이는 궁예 정권의 부당함을 부각시켜 고려 건국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의도로 파악하기도 한다.
아지태는 청주 출신으로 태봉의 관리였다. 궁예의 총애를 얻기 위해 같은 청주 사람들을 참소하였지만, 왕건에 의해 모함한 사실이 드러나 처벌받았다. ‘아지태 사건’은 태봉 내부의 정세가 변화하고, 918년 고려 건국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파악된다.
아지태 (阿志泰)
아지태는 청주 출신으로 태봉의 관리였다. 궁예의 총애를 얻기 위해 같은 청주 사람들을 참소하였지만, 왕건에 의해 모함한 사실이 드러나 처벌받았다. ‘아지태 사건’은 태봉 내부의 정세가 변화하고, 918년 고려 건국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파악된다.
후고구려의 관등.
원보 (元輔)
후고구려의 관등.
후고구려의 관서.
비룡성 (飛龍省)
후고구려의 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