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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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좌(開城座)는 1912년, 개성에 설립된 지역 극장이다. 경성의 원각사, 연흥사, 광무대와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의 근대식 초기 극장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극장이다. 개성좌의 창립을 발의한 자는 이기세(李基世)였다. 이기세는 조선에서 신파극을 전파할 목적으로 극단 유일단(唯一團)을 창단하고, 지역 극장 개성좌의 설립을 제안했다. 개성좌는 일제강점기를 통해 개성 유일의 지역 극장으로 존속하면서 개성 지역의 공연 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개성좌 (開城座)
개성좌(開城座)는 1912년, 개성에 설립된 지역 극장이다. 경성의 원각사, 연흥사, 광무대와 함께 일제강점기 조선의 근대식 초기 극장 중 하나로 손꼽히는 극장이다. 개성좌의 창립을 발의한 자는 이기세(李基世)였다. 이기세는 조선에서 신파극을 전파할 목적으로 극단 유일단(唯一團)을 창단하고, 지역 극장 개성좌의 설립을 제안했다. 개성좌는 일제강점기를 통해 개성 유일의 지역 극장으로 존속하면서 개성 지역의 공연 문화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극장은 20세기 무렵, 한국(조선)에 설립되기 시작하여 주로 연극이나 영화, 음악이나 무용 등을 무대 혹은 스크린에서 상연하는 데 사용된 시설물이다. 한국에서는 근대적 의미의 극장이 20세기 전후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일본 공연단과 극장주의 영향을 받으며 부산, 인천, 원산 등의 개항장을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경성, 대구, 평양 등과 같은 대도시에는 극장가가 형성됐다. 한국인들은 극장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접하면서 삶의 위안을 얻고 오락과 재미를 느꼈고, 소수의 선각자들과 예술가들은 극장을 근거지로 자기 예술 세계의 근간을 형성했다.
극장 (劇場)
극장은 20세기 무렵, 한국(조선)에 설립되기 시작하여 주로 연극이나 영화, 음악이나 무용 등을 무대 혹은 스크린에서 상연하는 데 사용된 시설물이다. 한국에서는 근대적 의미의 극장이 20세기 전후에 들어섰다. 처음에는 일본 공연단과 극장주의 영향을 받으며 부산, 인천, 원산 등의 개항장을 중심으로 확산되었고, 경성, 대구, 평양 등과 같은 대도시에는 극장가가 형성됐다. 한국인들은 극장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접하면서 삶의 위안을 얻고 오락과 재미를 느꼈고, 소수의 선각자들과 예술가들은 극장을 근거지로 자기 예술 세계의 근간을 형성했다.
1935년 이후에 배구자악극단은 무용인 배구자가 대외적인 공연 활동을 위하여 설립한 단체로, 주로 동양극장이 개관한 공연 활동에 활용한 악극단이다. 배구자의 활동 시기를 연극계 복귀(1926~1928), 단체 설립(1929~1933), 본격적인 활동기(1934~1935), 쇠퇴기(1937년 이후)로 구분한다면, 배구자악극단은 배구자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에 동양극장 반(半) 전속 단체의 위상을 가지면서 대중 극단으로서 본격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배구자악극단 (裵龜子樂劇團)
1935년 이후에 배구자악극단은 무용인 배구자가 대외적인 공연 활동을 위하여 설립한 단체로, 주로 동양극장이 개관한 공연 활동에 활용한 악극단이다. 배구자의 활동 시기를 연극계 복귀(1926~1928), 단체 설립(1929~1933), 본격적인 활동기(1934~1935), 쇠퇴기(1937년 이후)로 구분한다면, 배구자악극단은 배구자가 본격적으로 활동하는 시기에 동양극장 반(半) 전속 단체의 위상을 가지면서 대중 극단으로서 본격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