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한말(舊韓末) 요화(妖花) 배정자(裵貞子)의 조카딸인 배구자가 일본의 유명한 곡예단 ‘덴카스〔天勝〕예술단’의 단원으로 있다가, 1920년대에 배청자(裵淸子) · 홍청자(洪淸子) 등 무용과 노래에 뛰어난 소녀들을 중심으로 일본에서 창단한 악극단이다.
배구자 악극단은 일본에서 소녀가극(少女歌劇)을 하다가, 1930년 10월 귀국공연을 시작으로 국내 관서 · 관동지방에서 1년에 3∼4 차례 순회공연을 하는 등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귀국공연 작품으로 비가극(悲歌劇) 성태삼 작 · 연출「무궁화」와 희가극(喜歌劇)「라 말세이유」, 그리고 촌극(寸劇)과 노래와 춤을 공연하였다.
이 악극단은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만주 · 일본 등지를 자주 순회 공연하였다. 1935년 11월 배구자가 그의 남편 홍순언(洪淳彦)과 함께 연극전용 동양극장(東洋劇場)을 건립한 이후부터는 주로 국내에서 공연하였고, 틈틈이 해외공연을 하였다.
동양극장 개관기념공연으로 낭만극(浪漫劇)「멍텅구리 2세」, 촌극(寸劇)「월급날」, 무용극「급수부(汲水婦)」 등과 20여 명으로 구성된 소녀관현악단의 연주「조양곡(朝洋曲)」, 그리고 서양(西洋) 무용(클래식 · 재즈 · 탭 등 5종), 조선무용「아리랑」, 독창 · 합창 등을 무대에 올렸다. 1936년 다시 동양극장에서「안녕합쇼 서울」 · 「마음의 등불」 · 「사랑은 허무하기 물거품 같더라」등의 작품들을 공연하였다.
1937년에 홍순언이 사망하자 악극단의 활동은 점차 쇠퇴되었다.
배구자악극단은 다른 악극단들보다 인적 구성과 쇼에서 특히 뛰어났는데, 단원들이 대부분 일본의 ‘덴카스예술단’에서 훈련을 받았기 때문에 무용 · 쇼 · 연기가 뛰어났다. 특히 단장 배구자의 춤과 노래와 연기는 특출하여 인기를 끌었다. 뿐만 아니라 무대장치 · 의상 · 조명도 일본에서 들여와 호화로운 무대를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