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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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기는 죽은 사람의 내세를 위하여 무덤에 함께 묻던 그릇, 인형, 생활 용구 등의 기물이다. 순장의 폐해를 없애고 죽은 이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등장했다. 명기는 넓은 의미로 무덤에 부장되는 모든 부장품을 뜻한다. 협의로는 조선 시대에 부장된 10㎝ 이하 소형 규격의 기물을 의미한다. 소형 명기는 16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부장되기 시작한다. 조선 시대 명기 관련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명기는 자기·도기·와기 등 다양한 재질로 제작되어 당시 공예품 연구에 도움을 준다. 또한 조선 시대의 상장례 풍습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명기 (明器)
명기는 죽은 사람의 내세를 위하여 무덤에 함께 묻던 그릇, 인형, 생활 용구 등의 기물이다. 순장의 폐해를 없애고 죽은 이의 혼을 위로하기 위해 등장했다. 명기는 넓은 의미로 무덤에 부장되는 모든 부장품을 뜻한다. 협의로는 조선 시대에 부장된 10㎝ 이하 소형 규격의 기물을 의미한다. 소형 명기는 16세기 후반에 본격적으로 부장되기 시작한다. 조선 시대 명기 관련 기록은 『조선왕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명기는 자기·도기·와기 등 다양한 재질로 제작되어 당시 공예품 연구에 도움을 준다. 또한 조선 시대의 상장례 풍습을 알려주는 자료이다.
등요는 10° 이상의 경사면에 터널형 구조로 축조한 가마이다. 가마는 형태나 축조 방식, 구조, 열의 흐름, 재료, 사용 연료에 따라 분류한다. 등요는 평면 형태와 경사도에 따라 입요와 구분된다. 대부분 진흙으로 축조되었으나 고려 초기에 일부 벽돌로 축조되기도 했다. 고려·조선시대에 길이 20m 내외, 경사도 15∼20° 가량으로 정형화되었다. 등요 유적은 초기 철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등요의 축조와 발전은 도자기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하였다. 또한 고려청자·조선백자 같은 찬란한 도자문화의 기반이 되었다.
등요 (登窯)
등요는 10° 이상의 경사면에 터널형 구조로 축조한 가마이다. 가마는 형태나 축조 방식, 구조, 열의 흐름, 재료, 사용 연료에 따라 분류한다. 등요는 평면 형태와 경사도에 따라 입요와 구분된다. 대부분 진흙으로 축조되었으나 고려 초기에 일부 벽돌로 축조되기도 했다. 고려·조선시대에 길이 20m 내외, 경사도 15∼20° 가량으로 정형화되었다. 등요 유적은 초기 철기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전국적으로 분포되어 있다. 등요의 축조와 발전은 도자기의 대량생산을 가능케 하였다. 또한 고려청자·조선백자 같은 찬란한 도자문화의 기반이 되었다.
별도의 굽을 만들지 않고 뾰족한 저부(底部)를 가진 팽이 형태의 잔.
마상배 (馬上杯)
별도의 굽을 만들지 않고 뾰족한 저부(底部)를 가진 팽이 형태의 잔.
삼족배는 백제시대에 제작된 납작한 몸체에 다리가 세 개 달린 토기이다. 삼족배는 높이 5.0~7.0㎝, 입지름 10.0~15.0㎝ 가량으로 납작한 몸체에 세 개의 역삼각형 다리가 달린 토기이다. 한성기에 중국 서진(265~316) 금속기 또는 자기의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하였다. 한성기에는 뚜껑이 없는 무개식 삼족배만 제작되었으며, 웅진기에서 사비기에 이르는 시기에는 뚜껑과 세트를 이룬 유개식 삼족배가 생산되었다. 삼족배는 한성기부터 웅진기를 거쳐 사비기까지 전 시기에 등장하는 백제의 대표적인 토기 기종으로, 백제 토기의 변화 양상을 알려주는 중요 지표이다.
삼족배 (三足杯)
삼족배는 백제시대에 제작된 납작한 몸체에 다리가 세 개 달린 토기이다. 삼족배는 높이 5.0~7.0㎝, 입지름 10.0~15.0㎝ 가량으로 납작한 몸체에 세 개의 역삼각형 다리가 달린 토기이다. 한성기에 중국 서진(265~316) 금속기 또는 자기의 영향으로 새롭게 등장하였다. 한성기에는 뚜껑이 없는 무개식 삼족배만 제작되었으며, 웅진기에서 사비기에 이르는 시기에는 뚜껑과 세트를 이룬 유개식 삼족배가 생산되었다. 삼족배는 한성기부터 웅진기를 거쳐 사비기까지 전 시기에 등장하는 백제의 대표적인 토기 기종으로, 백제 토기의 변화 양상을 알려주는 중요 지표이다.
그릇 표면에 황유·백유·녹유·갈유·남유 등 3가지 이상의 연유를 시유한 도기. 삼채도기.
삼채 (三彩)
그릇 표면에 황유·백유·녹유·갈유·남유 등 3가지 이상의 연유를 시유한 도기. 삼채도기.
고족배는 ‘팔’ 자로 뻗은 높은 다리 위에 주발 모양 배신(杯身)이 붙은 잔이다. 한반도에는 삼국시대부터 등장했는데 고려 후기에는 상감청자로 제작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와 백자로 제작되었다. 분청사기 고족배는 형태가 상감청자 고족배와 유사하다. 백자 고족배는 주로 경기도 광주에서 생산되었는데 분청사기에 비해 원통형에 가까운 모습이며 대부분 별도의 문양을 장식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고족배는 술잔 또는 찻잔으로 사용되었고 왕실이나 지방에서 의례기로도 활용되었다. 한반도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각 지역 특색에 맞게 제작되어 독특한 기종으로 자리 잡았다.
고족배 (高足杯)
고족배는 ‘팔’ 자로 뻗은 높은 다리 위에 주발 모양 배신(杯身)이 붙은 잔이다. 한반도에는 삼국시대부터 등장했는데 고려 후기에는 상감청자로 제작되었다. 조선시대에는 분청사기와 백자로 제작되었다. 분청사기 고족배는 형태가 상감청자 고족배와 유사하다. 백자 고족배는 주로 경기도 광주에서 생산되었는데 분청사기에 비해 원통형에 가까운 모습이며 대부분 별도의 문양을 장식하지 않았다. 조선시대 고족배는 술잔 또는 찻잔으로 사용되었고 왕실이나 지방에서 의례기로도 활용되었다. 한반도 남부 지역을 중심으로 각 지역 특색에 맞게 제작되어 독특한 기종으로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