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김옥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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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전은 변경이나 군사요지에 설치해 군량에 충당한 토지이다. 농사도 짓고 전쟁도 수행한다는 취지로 군량을 현지에서 조달하여 국방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고려 초기에 영토가 확정되면서 양계(兩界) 지역과 서해와 동해 연변, 국경 밖에 설치되었다. 고려후기 권문세족이 겸병하면서 점차 소멸되었는데, 조선 건국 이후 군자(軍資) 확보를 위해 다시 설치하였다. 그러나 민전의 침탈, 농민 강제동원 등 폐단이 발생하여 치폐(置廢)를 거듭했다. 임진왜란으로 토지가 황폐해지고 양안이 미비하여 본래의 성격은 사라지고 관청의 경비를 보충하는 관둔전으로 변화되었다.
둔전 (屯田)
둔전은 변경이나 군사요지에 설치해 군량에 충당한 토지이다. 농사도 짓고 전쟁도 수행한다는 취지로 군량을 현지에서 조달하여 국방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 설치되었다. 고려 초기에 영토가 확정되면서 양계(兩界) 지역과 서해와 동해 연변, 국경 밖에 설치되었다. 고려후기 권문세족이 겸병하면서 점차 소멸되었는데, 조선 건국 이후 군자(軍資) 확보를 위해 다시 설치하였다. 그러나 민전의 침탈, 농민 강제동원 등 폐단이 발생하여 치폐(置廢)를 거듭했다. 임진왜란으로 토지가 황폐해지고 양안이 미비하여 본래의 성격은 사라지고 관청의 경비를 보충하는 관둔전으로 변화되었다.
조선시대 왕과 왕비 및 왕족의 무덤인 능(陵)·원(園)·묘(墓)를 지키는 수릉군에게 직역(職役)의 대가로 지급하는 토지.
수릉군전 (守陵軍田)
조선시대 왕과 왕비 및 왕족의 무덤인 능(陵)·원(園)·묘(墓)를 지키는 수릉군에게 직역(職役)의 대가로 지급하는 토지.
학전은 고려시대 이후 유학을 가르쳤던 각 교육 기관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지급된 토지이다. 문헌기록상 학전의 효시는 989년에 학교에 전장을 지급했다는 기록이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에 양현고를 설치하여 토지와 노비를 지급하였고, 지방에는 향교에 토지를 지급했다. 조선시대에는 성균관과 4학, 지방의 향교 및 사액서원에 토지를 지급하였는데 모두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토지였다. 학전에 대한 각 교육 기관의 출납은 일반적으로 조정의 검찰을 받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성균관과 4학의 경우는 예외였다. 하지만 향교전의 경우는 그 지방 수령의 감찰을 받아야 했다.
학전 (學田)
학전은 고려시대 이후 유학을 가르쳤던 각 교육 기관의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지급된 토지이다. 문헌기록상 학전의 효시는 989년에 학교에 전장을 지급했다는 기록이다. 고려시대에는 국자감에 양현고를 설치하여 토지와 노비를 지급하였고, 지방에는 향교에 토지를 지급했다. 조선시대에는 성균관과 4학, 지방의 향교 및 사액서원에 토지를 지급하였는데 모두 세금을 납부하지 않는 토지였다. 학전에 대한 각 교육 기관의 출납은 일반적으로 조정의 검찰을 받는 것이 원칙이었으나 성균관과 4학의 경우는 예외였다. 하지만 향교전의 경우는 그 지방 수령의 감찰을 받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