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서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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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시 100각법은 하루의 길이를 12시와 100각으로 균등하게 분할하는 시제이다. 시는 다시 초(初)와 정(正)으로 이분되었고, 매 시의 초와 정에 각기 4각과 1소각(小刻)이 할당되었다. 조선 세종 대에 12시 100각법에 근거한 시제를 정리한 지침서인 『누주통의(漏籌通義)』가 편찬되었다.
12시 100각법 (十二時 百刻法)
12시 100각법은 하루의 길이를 12시와 100각으로 균등하게 분할하는 시제이다. 시는 다시 초(初)와 정(正)으로 이분되었고, 매 시의 초와 정에 각기 4각과 1소각(小刻)이 할당되었다. 조선 세종 대에 12시 100각법에 근거한 시제를 정리한 지침서인 『누주통의(漏籌通義)』가 편찬되었다.
12시 96각법은 하루의 길이를 12시와 96각으로 균등하게 분할하는 시제이다. 매 시는 8각이며 1각은 15분이다. 서양 천문 역산학 지식을 바탕으로 편찬된 『시헌력』의 반포와 함께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에는 1653년에 전래되었고, 1789년에 『시헌력』 체제에 따른 시제 운용 매뉴얼인 『신법누주통의(新法漏籌通義)』가 편찬되었다.
12시 96각법 (十二時 九十六刻法)
12시 96각법은 하루의 길이를 12시와 96각으로 균등하게 분할하는 시제이다. 매 시는 8각이며 1각은 15분이다. 서양 천문 역산학 지식을 바탕으로 편찬된 『시헌력』의 반포와 함께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조선에는 1653년에 전래되었고, 1789년에 『시헌력』 체제에 따른 시제 운용 매뉴얼인 『신법누주통의(新法漏籌通義)』가 편찬되었다.
산법교정소는 조선 전기 세종 때 역산 연구를 전담했던 임시 관청이다. 문신 관료와 산학인이 산법교정소에 소속되어 산법을 익히고 역법을 추보하였다. 이 기능은 후에 또 다른 임시 관청인 역산소(曆算所)로 이관되었다. 산법교정소의 성과는 『칠정산(七政算)』 편찬으로 이어졌다.
산법교정소 (算法校正所)
산법교정소는 조선 전기 세종 때 역산 연구를 전담했던 임시 관청이다. 문신 관료와 산학인이 산법교정소에 소속되어 산법을 익히고 역법을 추보하였다. 이 기능은 후에 또 다른 임시 관청인 역산소(曆算所)로 이관되었다. 산법교정소의 성과는 『칠정산(七政算)』 편찬으로 이어졌다.
무인력은 당나라의 천문학자인 부인균(傅仁均)이 편찬한 역법이다. 619년에서 664년까지 사용되었다. 중국에서 반행된 역법 중 최초로 정삭법을 채용하였다. 624년 이후 고구려에 무인력으로 제작된 역서가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인력 (戊寅曆)
무인력은 당나라의 천문학자인 부인균(傅仁均)이 편찬한 역법이다. 619년에서 664년까지 사용되었다. 중국에서 반행된 역법 중 최초로 정삭법을 채용하였다. 624년 이후 고구려에 무인력으로 제작된 역서가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인덕력은 당나라 천문학자 이순풍(李淳風)이 편찬한 역법이다. 665년에서 728년까지 사용되었다. 수나라 황극력(皇極曆)을 기초로 만들어졌고 진삭법이 새로이 도입되었다. 674년에 신라가 당나라에서 도입해온 역법으로 추정된다.
인덕력 (麟德曆)
인덕력은 당나라 천문학자 이순풍(李淳風)이 편찬한 역법이다. 665년에서 728년까지 사용되었다. 수나라 황극력(皇極曆)을 기초로 만들어졌고 진삭법이 새로이 도입되었다. 674년에 신라가 당나라에서 도입해온 역법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