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성백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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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주는 일제강점기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성경을 연구하며 영적이고 주체적인 기독교의 길을 모색한 '예수교회' 설립 발기인이자 원산신학산 수도감이다. 신앙 동지들과 설립한 예수교회를 통한 그의 모험과 실험은 그가 1934년 그 신앙 공동체를 떠남과 함께 그의 역사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인 기독교 유형과 일본 제국주의의 정신적인 침탈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백남주 (白南柱)
백남주는 일제강점기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성경을 연구하며 영적이고 주체적인 기독교의 길을 모색한 '예수교회' 설립 발기인이자 원산신학산 수도감이다. 신앙 동지들과 설립한 예수교회를 통한 그의 모험과 실험은 그가 1934년 그 신앙 공동체를 떠남과 함께 그의 역사적인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서구의 오리엔탈리즘적인 기독교 유형과 일본 제국주의의 정신적인 침탈을 극복하려는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새롭게 조명되어야 한다.
『성산명경 (聖山明鏡)』은 1909년 탁사 최병헌 목사가 유교·불교·도교·기독교 진리를 문학적 대화 형식을 빌어 비교하여 논술하고 기독교복음의 진리를 변증한 신학서적이다. 한국 종교 대화 서적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존스 선교사와 편집하던 한국 최초 신학연구지 『신학월보(神學月報)』에 1907년부터 「성산유람긔(聖山遊覽記)」를 연재하고, 이를 다시 정리하여 간행하였다.
성산명경 (聖山明鏡)
『성산명경 (聖山明鏡)』은 1909년 탁사 최병헌 목사가 유교·불교·도교·기독교 진리를 문학적 대화 형식을 빌어 비교하여 논술하고 기독교복음의 진리를 변증한 신학서적이다. 한국 종교 대화 서적의 시초로 평가받는다. 존스 선교사와 편집하던 한국 최초 신학연구지 『신학월보(神學月報)』에 1907년부터 「성산유람긔(聖山遊覽記)」를 연재하고, 이를 다시 정리하여 간행하였다.
LA연합감리교회는 1904년, LA지역 한인 이민자들에 의해 설립된 기독교감리교회이다. 한인 이민사회의 친교와 교육과 문화의 중심이 되어 민족문화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배양하고 독립운동을 위한 요람으로 활동한 민족 교회였다. 한인 이민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갖게 하고, 이를 통해 미국사회 내에서 원만한 유대 관계를 도모하도록 하며, 한인들 간 결속과 단결을 증진시켜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고 확립하고자 하였다.
LA연합감리교회 (LA聯合監理敎會)
LA연합감리교회는 1904년, LA지역 한인 이민자들에 의해 설립된 기독교감리교회이다. 한인 이민사회의 친교와 교육과 문화의 중심이 되어 민족문화운동의 선구적 역할을 담당하면서 기독교 신앙을 배양하고 독립운동을 위한 요람으로 활동한 민족 교회였다. 한인 이민자들에게 기독교 신앙을 갖게 하고, 이를 통해 미국사회 내에서 원만한 유대 관계를 도모하도록 하며, 한인들 간 결속과 단결을 증진시켜 민족 정체성을 강화하고 확립하고자 하였다.
류형기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1950년대에 기독교교육운동, 문서선교운동, 교회 재건과 복구 운동을 전개한 기독교대한감리회 목사이다.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아오야마[靑山]학원,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안대학, 보스턴대학 신학부,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했다. 1927년 귀국하여 미감리교회 종교교육협회 청년부 간사, 기독교조선감리회 교육국 총무로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 양성에 힘썼다. 1951년, 부산에서 감리교 감독으로 뽑혀 전쟁 피난민과 교회 재건을 위해 모금 운동을 펼쳤다.
류형기 (柳瑩基)
류형기는 일제강점기와 해방 후 1950년대에 기독교교육운동, 문서선교운동, 교회 재건과 복구 운동을 전개한 기독교대한감리회 목사이다. 평양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아오야마[靑山]학원, 미국 오하이오 웨슬리안대학, 보스턴대학 신학부, 하버드대학에서 공부했다. 1927년 귀국하여 미감리교회 종교교육협회 청년부 간사, 기독교조선감리회 교육국 총무로 교회와 사회의 지도자 양성에 힘썼다. 1951년, 부산에서 감리교 감독으로 뽑혀 전쟁 피난민과 교회 재건을 위해 모금 운동을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