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심현용"
검색결과 총 6건
양양 가평리 주거지는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손양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 관련 유물산포지이자 생활유적이다. 발굴 조사 결과 1세기 전반대로 추정되는 원삼국시대 주거지 2기가 먼저 조사되었다. 이후 서기전 3000~2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2기, 서기전 2세기~서기 2세기로 추정되는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의 주거지 3기가 조사되었다.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 주거지에서는 다량의 탄화곡물(콩, 보리)이 확인되어 당시의 농경문화도 살펴볼 수 있다. 신석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의 주거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고고학적 자료이다.
양양 가평리 주거지 (襄陽 柯坪里 住居址)
양양 가평리 주거지는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손양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 관련 유물산포지이자 생활유적이다. 발굴 조사 결과 1세기 전반대로 추정되는 원삼국시대 주거지 2기가 먼저 조사되었다. 이후 서기전 3000~2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2기, 서기전 2세기~서기 2세기로 추정되는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의 주거지 3기가 조사되었다.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 주거지에서는 다량의 탄화곡물(콩, 보리)이 확인되어 당시의 농경문화도 살펴볼 수 있다. 신석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의 주거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고고학적 자료이다.
울릉 천부동 유적은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울릉도의 북동쪽 해안의 바다를 조망하는 구릉이나 산등성이에 2~3기씩 분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하부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횡구식 석실묘를 조성하고 상부에 돌들을 쌓아 봉토(봉석)를 이르는 독특한 구조이다. 고분과 주변에서 6세기 중엽의 단각고배, 7세기 후반의 대부완과 대부병, 9~10세기의 사각병·편병·주름무늬병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로 미루어 삼국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긴 기간 동안 계속해서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울릉 천부동 유적 (鬱陵 天府洞 遺蹟)
울릉 천부동 유적은 경상북도 울릉군 북면에 있는 삼국시대 이후 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울릉도의 북동쪽 해안의 바다를 조망하는 구릉이나 산등성이에 2~3기씩 분포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하부에 축대를 쌓고 그 위에 횡구식 석실묘를 조성하고 상부에 돌들을 쌓아 봉토(봉석)를 이르는 독특한 구조이다. 고분과 주변에서 6세기 중엽의 단각고배, 7세기 후반의 대부완과 대부병, 9~10세기의 사각병·편병·주름무늬병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이러한 유물로 미루어 삼국시대부터 남북국시대까지 긴 기간 동안 계속해서 이곳에 사람이 살았음을 확인할 수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산 30번지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금석문.
울진 성류굴 신라 석각 (蔚珍 聖留窟 新羅 石刻)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산 30번지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금석문.
홍천 역내리 고분은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두촌면에 있는 삼국시대 굴식돌방무덤·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석실분 14기가 조사되었는데 9호 석실분을 제외하고는 군집을 이루어 조영되었으며 봉토는 대부분 삭평되었다. 1호는 횡혈식 석실분이며, 나머지 13기는 횡구식 석실분이다. 평면 형태는 5호 석실분만 세장방형이고 나머지는 모두 장방형이다. 축조 시기는 가장 이른 것이 6세기 후반경이며 가장 늦은 것이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은 신라의 영역 확장 과정에서 홍천지역이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홍천 역내리 고분 (洪川 驛內里 古墳)
홍천 역내리 고분은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두촌면에 있는 삼국시대 굴식돌방무덤·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석실분 14기가 조사되었는데 9호 석실분을 제외하고는 군집을 이루어 조영되었으며 봉토는 대부분 삭평되었다. 1호는 횡혈식 석실분이며, 나머지 13기는 횡구식 석실분이다. 평면 형태는 5호 석실분만 세장방형이고 나머지는 모두 장방형이다. 축조 시기는 가장 이른 것이 6세기 후반경이며 가장 늦은 것이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은 신라의 영역 확장 과정에서 홍천지역이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강릉 홍제동 유적은 석기 시대 이후 금동불상과 건물터 등이 나온 유적이다. 강릉 남대천 변의 북쪽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해 있다. 발굴 전에는 청동기 시대 민무늬토기편과 석기 1점과 고려시대 토기편이 채집되어 구석기~고려시대에 이르는 고분유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2007년 발굴 조사에 의해 통일신라~조선시대의 절터로 확인되었다. 북단부에서 9세기의 금동불상 1점, 15세기의 분청자편, 18~19세기의 와편 및 자기편이 수습되었고, 금당지·승당지·집수정·축대와 담장지 등이 발견되었다. 그 결과 절은 통일신라 말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릉 홍제동 유적 (江陵 洪濟洞 遺蹟)
강릉 홍제동 유적은 석기 시대 이후 금동불상과 건물터 등이 나온 유적이다. 강릉 남대천 변의 북쪽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해 있다. 발굴 전에는 청동기 시대 민무늬토기편과 석기 1점과 고려시대 토기편이 채집되어 구석기~고려시대에 이르는 고분유적으로 보았다. 그러나 2007년 발굴 조사에 의해 통일신라~조선시대의 절터로 확인되었다. 북단부에서 9세기의 금동불상 1점, 15세기의 분청자편, 18~19세기의 와편 및 자기편이 수습되었고, 금당지·승당지·집수정·축대와 담장지 등이 발견되었다. 그 결과 절은 통일신라 말에 창건되어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고산군 거진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널무덤 관련 생활유적.
고성 대대리 유적 (高城 大垈里 遺蹟)
강원특별자치도 고산군 거진읍에 있는 청동기시대 이후 집터와 고인돌·널무덤 관련 생활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