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홍천 역내리 고분은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두촌면에 있는 삼국시대 굴식돌방무덤·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다. 석실분 14기가 조사되었는데 9호 석실분을 제외하고는 군집을 이루어 조영되었으며 봉토는 대부분 삭평되었다. 1호는 횡혈식 석실분이며, 나머지 13기는 횡구식 석실분이다. 평면 형태는 5호 석실분만 세장방형이고 나머지는 모두 장방형이다. 축조 시기는 가장 이른 것이 6세기 후반경이며 가장 늦은 것이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은 신라의 영역 확장 과정에서 홍천지역이 중요한 거점으로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두촌면에 있는 삼국시대 굴식돌방무덤·앞트기식돌방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역사적 변천
내용
1호는 북서-남동향으로 석실 크기는 길이 176㎝, 너비 125㎝, 깊이 120㎝이다. 봉토 지름이 670㎝이고 시상은 서벽과 북벽, 남벽에 붙여 작은 할석으로 1단만 깔았다. 천장부는 판상할석으로 3단을 덮었는데, 2단까지는 네 모서리를 줄인 후 맨 위에 판상할석 1매를 얹었다. 널길(연도)은 우편재로 길이 150㎝, 너비 57㎝, 높이 80㎝이며, 석실과 연도의 경계부에 문틀시설을 하고, 판상할석 1매로 폐쇄하였다. 유물은 철환 ·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2호는 북동-남서향으로 석실 크기는 길이 126㎝, 너비 62㎝, 깊이 65㎝이다. 호석 지름이 약 250㎝이고, 벽체는 종·횡평적으로 축조하였으며, 개석은 판상석으로 덮었다. 시상은 바닥 중앙에 자갈을 깔았다. 유물은 완 · 철촉 · 철도자 등이 출토되었다.
3호는 북동-남서향이며, 석실 크기는 길이 260㎝, 너비 130㎝, 깊이 110㎝이다. 호석 지름은 약 470㎝, 벽석은 8~9단으로 축조되었으며, 양 장벽이 내경한다. 부장품은 북단벽과 동장벽 중앙에서 유개부가구연장경호 등의 토기류와 청동 띠꾸미개(대금구) · 집게형 철기 등이 출토되었다.
4호는 북서-남동향이며, 석실 크기는 길이 270㎝, 너비 103㎝, 깊이 116㎝이다. 벽체는 할석과 강돌로 6~7단 쌓았고, 시상은 바닥 전체에 강자갈로 한 겹 깔았다. 북쪽 단벽에는 부장공간이 마련되었는데, 병 등의 토기류와 가락바퀴(방추차) · 철도자가 출토되었다.
5호는북동-남서향으로 석실 크기는 230㎝, 너비 76㎝, 깊이 85㎝이다. 횡구부는 유단식이며, 남단벽은 2단까지 종평적했고, 그 위에 판석 2매를 세워 막았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6호는 북동-남서향으로 석실 크기는 길이 240㎝, 너비 116㎝, 깊이 100㎝이다. 천장은 판석으로 덮었고, 벽석은 7~8단으로 축조하였다. 횡구부는 남벽에 판석 2매를 세워 막았다. 유물은 병 등 토기류와 은제 귀걸이(이식) · 철도자 · 동곳이 출토되었다.
7호는 북동-남서향으로 호석 지름은 약 340㎝이다. 석실 크기는 길이 300㎝, 너비 130㎝, 깊이 146㎝이다. 벽석은 6~7단이 남아 있고, 북단벽은 양 장벽과 맞물리게 하면서 모줄임하였다. 남단벽은 3단까지 할석을 쌓고, 그 위에 판석 1매를 세워쌓기로 막았다. 북단벽에 부장공간이 있다. 유물은 유개고배 등 토기류와 청동 대금구 · 관정 등이 출토되었다.
8호는 북서-남동향으로 호석 지름은 약 300㎝이다. 석실 크기는 길이 235㎝, 너비 87㎝, 깊이 80㎝이다. 벽석은 7단으로 축조되었고 벽체는 약간 내경한다. 천장은 판석 5매로 덮었고, 석실 바닥에는 시상을 자갈로 한 겹 깔았다. 횡구부는 유단식이고 판석 2매로 세워 막았다. 유물은 완 · 동곳이 출토되었다.
9호는 북서-남동향으로 석실 크기는 길이 218㎝, 너비 115㎝, 깊이 56㎝이며, 벽석은 3단 정도만 잔존한다. 횡구부는 훼손되어 확인할 수 없다. 시상은 자갈을 전면에 한 겹 깔았으며, 북 단벽에 부장공간이 있다. 유물은 뚜껑 있는 굽다리 접시(유개고배), 병 등 토기류와 방추차가 출토되었다.
10호는 동북-서남향으로 호석 지름 약 500㎝이다. 석실 크기는 길이 243㎝, 너비 108㎝, 깊이 115㎝이다. 천장은 판석 6매로 덮었고, 횡구부는 판석 1매로 세워 막았다. 유물은 동단벽쪽에서 출토되었으며, 북장벽에서도 토기류와 인골 2개체 분이 수습되었다.
11호는 북동-남서향으로 호석 지름 약 480㎝이고 천장은 판석 5매로 덮었다. 석실 크기는 길이 264㎝, 너비 112㎝, 깊이 110㎝이다. 횡구부는 유단식이고 그 위에 판석 3매를 세워 막았다. 시상은 석실 전체에 자갈을 깔아 만들었고, 벽석은 내경한다. 북단벽에 인접해서 토기가 출토되었으며, 봉토 속에서도 대부완 · 뚜껑(개) 등 토기가 수습되었다.
12호는 북서-남동향으로 석실 크기는 길이 317㎝, 너비 112㎝, 깊이 108㎝이다. 벽석은 1단은 종평적을, 그 위로는 횡평적을 주로 하면서 6단 정도 쌓았다. 양 장벽은 내경하고, 횡구부는 유단식으로 판석 2매로 세워 막았다. 시상은 석실 바닥 전체에 할석을 깔았고, 북벽 주변에 부장공간을 만들어 병 등의 토기를 두었다.
13호는 북동-남서향으로 석실 크기는 길이 213㎝, 너비 80㎝, 깊이 58㎝이다. 벽석은 6~7단이며, 천장은 판석 5매로 덮었다. 횡구부는 유단식이고 시상은 강돌로 바닥 전체에 한 겹으로 깔았고 북단벽에서 토기 2점이 출토되었다.
14호는 북동-남서향으로 석실 크기는 길이 128㎝, 너비 45㎝, 깊이 50㎝의 소형이며, 호석 일부가 남아 있다. 횡구부는 판석 1매를 세워 막았다. 토기와 관정이 출토되었다.
축조 시기는 12호의 부가구연장경호와 개가 가장 이른 6세기 후반경이며, 6 · 10 · 11호는 개와 고배로 보아 7세기 초반, 3 · 7 · 14호는 개와 부가구연장경호로 보아 가장 늦은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특히 3 · 7호의 당식 대금구는 7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특징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홍천 역내리 고분군: 국도 44호선(구성포~어른간) 도로 확․포장공사구역내 유적 발굴조사 보고서(Ⅱ)』(강원문화재연구소, 2005)
- 「4~6세기 북한강 유역 고분의 특징과 축조배경 고찰」(황보경, 『고구려발해연구』 37,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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