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양양 가평리 주거지는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손양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 관련 유물산포지이자 생활유적이다. 발굴 조사 결과 1세기 전반대로 추정되는 원삼국시대 주거지 2기가 먼저 조사되었다. 이후 서기전 3000~2000년경으로 추정되는 신석기시대 주거지 2기, 서기전 2세기~서기 2세기로 추정되는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의 주거지 3기가 조사되었다.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 주거지에서는 다량의 탄화곡물(콩, 보리)이 확인되어 당시의 농경문화도 살펴볼 수 있다. 신석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의 주거문화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고고학적 자료이다.
정의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손양면에 있는 석기시대 이후 집터 관련 유물산포지. 생활유적.
개설
내용
1994~1996년 조사된 신석기시대 유구는 주거지 2기, 야외노지 3기이다. 1호 주거지는 평면 말각방형으로 길이 850㎝, 너비 800㎝, 깊이 40㎝의 대형이며, 장축방향은 북서-남동향이다. 동남편에 2m이상 돌출부가 있는데, 출입구로 추정된다. 바닥은 약 10㎝ 두께로 진흙다짐을 하였고 가운데에 노지가 있다. 가장자리에는 불에 탄 나무와 갈대가 확인되었으며, 주거지 내․외에서 주혈들이 확인되었다. 유물은 누름무늬(押引文) · 어골문 · 점줄무늬(點列文)의 빗살무늬토기편과 돌살촉 · 갈돌 · 갈판 · 돌도끼 · 어망추 · 탄화된 씨앗 등이 출토되었다. 2호 주거지는 벽선이나 바닥 윤곽선은 확인되지 않았으나, 바닥 깊이는 약 35㎝이다. 내부 가운데에 화덕자리가 있으며, 그 외곽 네 곳에 주혈이 있다. 화덕자리는 20~30㎝ 크기의 할석들을 장방형으로 배치하였고 내부는 수혈식으로 만들었다. 유구 주변에서 빗살무늬토기편 · 돌도끼 · 어망추 등이 출토되었다.
야외 화덕자리의 경우, 1 · 2호는 지름 120㎝, 100㎝ 크기의 평면 원형으로 인접하여 배치되었다. 할석들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으며 내부에서 목탄과 탄화된 도토리가 출토되었다. 3호는 지름 약 100㎝의 평면 원형으로 할석과 천석이 불규칙하게 놓여 있다. 내부에는 목탄이 있으며, 주변에서 빗살무늬토기편과 무문양 토기편이 출토되었다. 주거지와 야외 화덕자리의 조성 시기는 서기전 3000~2000년경으로 추정된다.
1994~1996년 조사된 초기철기시대~원삼국시대 유구는 주거지 3기이다. 1호는 결실되어 바닥면만 일부 남아있는데, 잔존크기는 남북 340㎝, 동서 240㎝ 정도이다. 바닥에는 약 10㎝의 진흙을 깔았다. 2호는 장축방향은 북서-남동향이며, 평면 여(呂)자형으로 전체 크기는 장축 10.5m, 단축 5.5m이다. 북쪽 큰 방은 장축 620㎝, 단축 550㎝, 깊이 50~65㎝의 크기이다. 남쪽 작은 방은 장축 340㎝, 단축 210㎝의 크기이다. 두 방 모두 바닥에 진흙을 깔았으며, 서로 연결하는 통로는 길이 약 170㎝, 너비 약 140㎝, 깊이 10~30㎝의 크기로 남쪽에서 북쪽으로 경사져 있고, 바닥에 진흙을 얕게 깔았다. 큰방 가운데에 화덕이 있으며, 주거지 내 · 외부에서 주혈이 조사되었다. 또 내부에서 불에 탄 판자와 나무 및 갈대, 보리와 콩들이 조사되었다. 유물은 적갈색 경질무문토기 · 검은간토기(흑색마연토기) · 타날문토기와 쇠낫(철겸) · 철도자 · 철촉 등이 출토되었다. 3호 주거지는 대부분 파괴되어 형태를 알 수 없으며, 잔존크기는 장축 380㎝, 단축 340㎝이다. 바닥에는 진흙다짐을 하였으며, 가운데에 화덕자리가 있다. 내부에서 불에 탄 판자와 나무가 노출되었다. 유물은 적갈색 경질무문토기, 대롱옥(管玉)이 출토되었다. 이 주거지의 조성 시기는 서기전 2세기~서기 2세기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문화유적분포지도: 양양군』(강원문화재연구소, 2003)
- 『한국고고학사전』(국립문화재연구소, 2001)
- 『양양 가평리』(국립문화재연구소, 1999)
- 『양양군의 역사와 문화유적』(강릉대학교 박물관, 1994)
- 『양양군가평리주거지발굴조사보고』Ⅰ(강릉대학박물관, 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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