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동준"
검색결과 총 4건
중국의 송대에 발달한 정주학 또는 주자학을 가리키는 학문. 유학.
도학 (道學)
중국의 송대에 발달한 정주학 또는 주자학을 가리키는 학문. 유학.
유교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에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을 계승한 종교이다. 공자는 인과 덕에 의해 천명에 따르는 이상세계를 인간의 힘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사상은 유교 경전인 사서삼경에 녹아 있다. 공자의 사상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전파되었지만 주로 국가운영원리로서의 유학이었다. 종교적 체계를 갖추는 것은 고려말 조선초에 이르러서였다. 문묘를 세우고 공자와 성현의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고 민간에서도 유교사상에 따른 제사 풍습 등이 체계적으로 자리잡았다. 조선의 경우 주자학 일변도로 치달았다는 지적이 있다.
유교 (儒敎)
유교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에 공자가 체계화한 사상을 계승한 종교이다. 공자는 인과 덕에 의해 천명에 따르는 이상세계를 인간의 힘으로 실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사상은 유교 경전인 사서삼경에 녹아 있다. 공자의 사상은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나라에 전파되었지만 주로 국가운영원리로서의 유학이었다. 종교적 체계를 갖추는 것은 고려말 조선초에 이르러서였다. 문묘를 세우고 공자와 성현의 위패를 모셔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고 민간에서도 유교사상에 따른 제사 풍습 등이 체계적으로 자리잡았다. 조선의 경우 주자학 일변도로 치달았다는 지적이 있다.
이이는 조선전기 「동호문답」, 「인심도심설」, 『성학집요』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신이다.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1584년(선조 17)에 사망했다. 1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기도 했으나 20세에 하산해 유학에 전념했다. 이후 총 9번의 과거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렸다. 1568년 천추사의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고, 1583년 병조판서가 되어 선조에게 시무육조와 십만양병설 등 개혁안을 올렸다.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도 힘썼으며 주자학의 핵심을 간추린 『성학집요』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이이 (李珥)
이이는 조선전기 「동호문답」, 「인심도심설」, 『성학집요』 등을 저술한 학자이자 문신이다. 1536년(중종 31)에 태어나 1584년(선조 17)에 사망했다. 19세 때 금강산에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기도 했으나 20세에 하산해 유학에 전념했다. 이후 총 9번의 과거에 모두 장원급제하여 구도장원공이라 불렸다. 1568년 천추사의 서장관으로 명에 다녀왔고, 1583년 병조판서가 되어 선조에게 시무육조와 십만양병설 등 개혁안을 올렸다.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도 힘썼으며 주자학의 핵심을 간추린 『성학집요』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충효사상은 중국·한국·일본 등 아시아 유교 문화권이 도덕 관념으로 중시한 유교교리를 가리키는 유교용어이다. 충효의 정신적 기초는 상고 이래 우리 민족의 습속과 전통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유교가 전래·정착하면서 그 이론적·사상적 깊이가 더해졌다. 불교문화 속에서도 충효의 정신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충효사상은 역사적으로 민족을 내우외환으로부터 보존해온 근원적 사상이자, 민족문화를 유지·발전시켜 온 근원적 동력이다. 다만 폐쇄적 가족주의와 민족주의로 기울거나 전근대적 봉건도덕을 유지하는 데 치우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충효사상 (忠孝思想)
충효사상은 중국·한국·일본 등 아시아 유교 문화권이 도덕 관념으로 중시한 유교교리를 가리키는 유교용어이다. 충효의 정신적 기초는 상고 이래 우리 민족의 습속과 전통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유교가 전래·정착하면서 그 이론적·사상적 깊이가 더해졌다. 불교문화 속에서도 충효의 정신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이다. 충효사상은 역사적으로 민족을 내우외환으로부터 보존해온 근원적 사상이자, 민족문화를 유지·발전시켜 온 근원적 동력이다. 다만 폐쇄적 가족주의와 민족주의로 기울거나 전근대적 봉건도덕을 유지하는 데 치우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