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필자 : 이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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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홍릉(江華 洪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고려 후기 제23대 고종의 능이다. 홍릉은 강화군 고려산 중턱의 남사면에 있다. 1916년 조사 보고에 의하면 능역 내 호석과 난간 일부가 남아 있는 봉분과 석수 4마리, 석인상 4구, 정자각 터 등이 남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사자를 비롯한 일부 석물이 사라진 상태이다. 1970년대 정비 과정에서 능역이 상당 부분 변형되었다.
강화 홍릉 (江華 洪陵)
강화 홍릉(江華 洪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에 있는 고려 후기 제23대 고종의 능이다. 홍릉은 강화군 고려산 중턱의 남사면에 있다. 1916년 조사 보고에 의하면 능역 내 호석과 난간 일부가 남아 있는 봉분과 석수 4마리, 석인상 4구, 정자각 터 등이 남아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석사자를 비롯한 일부 석물이 사라진 상태이다. 1970년대 정비 과정에서 능역이 상당 부분 변형되었다.
고려 공양왕릉(高麗 恭讓王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4대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능이다. 공양왕은 이성계 등에 의해 추대되었으나 조선 건국 직전에 폐위되어 강원도로 추방되었다가 1394년 삼척에서 살해되었다. 공양왕릉은 쌍릉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복원 정비를 하면서 왕릉의 상설 제도와 어긋나게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발굴을 통해 능역과 석실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여 복원할 필요가 있다.
고려 공양왕릉 (高麗 恭讓王陵)
고려 공양왕릉(高麗 恭讓王陵)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에 있는 고려 후기 제34대 공양왕과 순비 노씨의 능이다. 공양왕은 이성계 등에 의해 추대되었으나 조선 건국 직전에 폐위되어 강원도로 추방되었다가 1394년 삼척에서 살해되었다. 공양왕릉은 쌍릉으로 조성되어 있는데, 복원 정비를 하면서 왕릉의 상설 제도와 어긋나게 석물이 배치되어 있다. 발굴을 통해 능역과 석실의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여 복원할 필요가 있다.
소릉(紹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고려 후기 제21대 국왕 희종의 비인 성평왕후 임씨의 능이다. 1247년 강화에서 장사 지냈으므로 무덤은 강화에 있을 것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위치를 알 수 없다. 내가면 황천리와 외포리에 관련 지명과 무덤군이 남아 있지만, 지표 조사 결과 왕릉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양도면 능내리에 있는 2기의 왕릉에 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가릉이 소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소릉 (紹陵)
소릉(紹陵)은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고려 후기 제21대 국왕 희종의 비인 성평왕후 임씨의 능이다. 1247년 강화에서 장사 지냈으므로 무덤은 강화에 있을 것이나 기록이 남아 있지 않아 위치를 알 수 없다. 내가면 황천리와 외포리에 관련 지명과 무덤군이 남아 있지만, 지표 조사 결과 왕릉이 아닌 것으로 확인되었다. 양도면 능내리에 있는 2기의 왕릉에 대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가릉이 소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후릉(厚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장풍군 월고리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후기 제22대 국왕 강종의 능이다. 1213년 수창궁에서 강종이 승하하자 안종 무릉 옆에 무덤을 만들었다. 그러나 무릉과 후릉이 풍수에 맞지 않아 그때마다 외세의 침입이 있었다는 주장에 따라 이장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실제 이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풍군 월고리 금신봉 중턱에 2기의 왕릉이 남아 있는데, 이 중 하나가 후릉일 가능성이 높다. 고종 연간에만 세 차례에 걸친 도굴이 있었다.
후릉 (厚陵)
후릉(厚陵)은 북한 개성특별시 장풍군 월고리에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고려 후기 제22대 국왕 강종의 능이다. 1213년 수창궁에서 강종이 승하하자 안종 무릉 옆에 무덤을 만들었다. 그러나 무릉과 후릉이 풍수에 맞지 않아 그때마다 외세의 침입이 있었다는 주장에 따라 이장을 추진하려고 했으나 실제 이장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장풍군 월고리 금신봉 중턱에 2기의 왕릉이 남아 있는데, 이 중 하나가 후릉일 가능성이 높다. 고종 연간에만 세 차례에 걸친 도굴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