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인천광역시 강화군에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고려 후기 제21대 국왕 희종의 비인 성평왕후 임씨의 능.
건립경위
왕비로 책봉된 지 8개월 만에 왕준명(王濬明)이 주도한 최충헌 살해 모의가 발각되면서 희종과 함께 폐위되었다. 1247년(고종 34)에 강화에서 승하하여 소릉(紹陵)에 장사 지냈다. 그러나 장지(葬地)를 기록하지 않아 무덤을 특정할 수 없는 상태이다.
변천
하지만 조선시대의 모든 기록이 상기한 4기의 왕릉만을 대상으로 하였고, 소릉에 대하여는 기록하지 않았다. 이 점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 간행되기 이전에 이미 소릉을 잃어버렸고 다시 찾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형태와 특징
발굴 조사 결과, 두 무덤은 모두 고려시대 왕릉인 횡구식 석실분이고 능내리 석실분이 가릉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능내리 석실분이 가릉보다 위계가 높으며, 묻힌 사람은 모두 여성이었다. 강화에서 사망한 왕후는 세 사람이다. 이 중 원덕태후의 무덤은 양도면 길정리로 비정되기 때문에 이 두 무덤은 순경태후와 성평왕후의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순경태후가 성평왕후보다 10년 먼저 승하하였고, 승하 당시 폐비의 신분이었던 성평왕후에 비해 세손인 충렬왕을 낳은 태자비의 신분이었던 순경태후의 위계가 높았다. 따라서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가릉이 소릉이고, 능내리 석실분이 가릉일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원전
- 『강도지(江都誌)』
- 『고려사(高麗史)』
-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단행본
- 『강화 고려왕릉 발굴조사보고서』(국립문화재연구소, 2007)
- 『강화의 문화유적 지표조사보고서』(인천광역시 · 대한불교조계종문화유산발굴조사단, 2002)
논문
- 이상준, 「강화 고려왕릉의 피장자 검토」(『중앙고고연구』, 중앙문화재연구원, 2017)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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