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복양

  • 역사
  • 인물
  • 조선 후기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 시호문간(文簡)
  • 송곡(松谷)
  • 중초(仲初)
인물/전통 인물
  • 본관풍양(豊壤)
  • 사망 연도1671년(현종 12)
  • 성별남성
  • 주요 관직형조판서|대제학|이조판서
  • 출생 연도1609년(광해군 1)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차문섭 (단국대학교, 한국사)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후기에, 형조판서, 대제학, 이조판서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풍양(豐壤). 자는 중초(仲初), 호는 송곡(松谷). 의빈부도사 조간(趙侃)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지중추부사 조영중(趙瑩中)이고, 아버지는 좌의정 조익(趙翼)이다. 어머니는 성주 현씨(星州玄氏)로 현덕량(玄德良)의 딸이다. 김상헌(金尙憲)의 문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33년(인조 11) 사마시에 합격하고, 1638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검열을 거쳐 지평 등을 역임하였다. 1641년 정언으로 있을 때, 인조의 아우인 능원대군(綾原大君) 집 객청(客廳)에 국고의 음식을 공급하는 데 반대하다가 체직되었으나 조석윤(趙錫胤)의 구원으로 다시 정언에 임명되었다. 이후 헌납·교리를 지냈다.

1649년(효종 즉위년) 지평을 거쳐 부교리가 되었는데, 붕당의 폐를 주장하다가 오히려 원두표(元斗杓)의 당으로 지목되어 왕의 미움을 샀으나 조석윤 등의 신구로 무사하였다. 1651년(효종 2) 그의 아버지 익이 쓴 윤방(尹昉)의 시장(諡狀) 문제로 의금부에 감금되었다가 곧 풀려났으나, 벼슬에는 나가지 못하였다.

1653년 헌납으로 복직된 뒤, 부교리·이조정랑을 역임하고 집의가 되었다. 그러나 사적인 감정으로 사천(史薦)을 마음대로 막았다고 하여 파직되었다가 또다시 조석윤의 파직 환수 주장에 의해 종성부사로 밀려났다. 그 뒤 서원리(徐元履) 등의 적극적인 주장으로 다시 겸보덕으로 돌아와 집의·겸필선·사간·응교를 역임하였다.

1657년 시강관(侍講官)으로 궁중음악의 타락을 지적, 고악(古樂)을 본받아 이를 시정할 것을 주장하고, 악장옥책교문(樂章玉冊敎文)을 지었다. 이듬해 응교로서 서필원(徐必遠)의 많은 기생을 둔 것을 비방하다가 효종의 미움을 샀으나 송준길(宋浚吉)의 구원으로 다시 부응교가 된 뒤 1659년 이조참의가 되었다.

현종이 즉위하면서 적극적인 진휼정책의 이행을 주장하였다. 1660년(현종 1)에 대사성, 이듬해에는 대사간으로 별도로 설치된 진휼청당상(賑恤廳堂上)이 되어 흉년으로 기아에 있는 백성들을 구제하는 데에 힘썼다. 그 뒤 부제학·예조참판·병조참판·동지성균관사·강화유수를 역임하고 여러 차례 대사성을 지낸 뒤 원자(元子)의 보양관(輔養官)이 되었다.

1668년에는 예조판서로 대제학을 겸하여 정시(庭試)를 총괄했으나, 과거의 시제(試題)가 같은 것을 두 번 출제한 실수로 이듬해에 파직되었다가 곧 형조판서로 돌아왔다. 그 뒤 우참찬·대제학·이조판서·예조판서를 역임하였다. 광주(廣州)의 명고서원(明皐書院)에 제향되었고, 저서로 『송곡집』이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참고문헌

  • - 『인조실록』

  • - 『효종실록』

  • - 『현종실록』

  • - 『현종개수실록』

  • - 『숙종실록』

  • - 『영조실록』

  • - 『정조실록』

  • - 『국조방목』

  • - 『연려실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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