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극 ()

현대음악
개념
음악을 중심으로 문학, 연극, 미술, 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가 포함된 종합 무대 예술. 오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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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가극은 오페라(Opera)를 지칭하는 용어로 음악을 중심으로 문학, 연극, 미술, 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가 포함된 종합 무대 예술이다. 근대 초기에는 여러 가지 명칭으로 혼용되었으나 해방 이후, 이유선이 창단한 국제오페라사에서 1948년 1월 「라 트라비아타」를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으로 무대에 올리면서 ‘오페라’라는 이름으로 정착되었다. 이후 1962년 국립오페라단이 창설되면서 오페라 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했으며, 오늘날에는 각 지역별로 다수의 오페라단이 창단되어 오페라가 활발하게 공연되고 있다.

정의
음악을 중심으로 문학, 연극, 미술, 무용 등 다양한 예술 장르가 포함된 종합 무대 예술. 오페라.
개설

‘가극’이라는 용어는 오페라(Opera)를 지칭하는 일본어 ‘歌劇(かげき)’을 번역한 형태이다. 근대 초기에는 모든 음악극 형식을 가극으로 통칭하여 ‘음악으로 된 연극’이라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따라서 초기 가극은 여러 가지 명칭과 혼용되고 오페라와 관련 없는 작품도 가극으로 불렸다. 라미라가극단이나 반도가극단 등과 같이 주1 형식의 작품을 주로 하는 주2 명칭에 가극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후 1940년대 레코드사 소속 단체들이 생기면서 가요가 중심이 된 대중적 음악극 형식이 관객의 인기를 얻게 되었고, 이러한 장르를 ‘악극’으로 총칭하게 되었다. 이 시기부터 가극은 오페라 형식을 지향하는 음악극으로, 악극은 좀 더 대중적인 음악극을 의미하는 용어로 구분되어 사용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 가극이란 명칭은 테너 이유선이 1947년 조선오페라협회를 결성하고 국제오페라사라는 오페라단을 창단하여 1948년 1월 주3의 오페라 「라 주4를 한국 최초의 오페라 공연으로 무대에 올리면서 ‘오페라’라는 이름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가극의 음악은 독창 · 중창 · 합창 · 관현악 등으로 구성된다. 성악가들은 음역에 맞게 각 배역을 분담하여 연기를 하며, 관현악단은 전체 음악의 반주와 개막 전의 서주곡, 막 사이의 간주곡을 맡는다. 또한 가극 공연에는 무용이 삽입되거나 노래를 부르지 않는 연기자가 추가되기도 하며, 그 외 각종 무대장치와 소품 · 의상이 갖추어진다. 따라서 가극은 종합 무대 예술로 간주되고 있다.

서양에서 연극적인 음악은 고대 그리스 이래로 계속되어 왔으나, 본격적인 가극은 1600년 경 고대 그리스극을 모범으로 한 새로운 극음악에 대한 관심으로 피렌체에서 시작되어 로마 · 나폴리 · 베네치아 등지에서 성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가극 운동은 프랑스 · 독일 등 유럽 각국에 영향을 주어 여러 가지 가극의 양상을 낳게 하였다. 그 후 주5주6, 현대를 거치며 여러 작곡가를 통하여 가극이 발전했다.

가극은 비극적인 내용과 희극적인 내용에 따라 종류를 구분하는데, 비극적인 내용의 가극을 주7이라고 하여 정통으로 여기고 있으며, 희극적인 내용의 가극은 주8이라 부른다.

한국 오페라 공연사

우리나라 음악가들이 제작한 첫 번째 오페라 공연은 1948년 1월 조선오페라협회에서 공연한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이다. 이어서 1949년에는 한규동, 황병덕이 중심이 된 한불문화협회가 주9의 「파우스트」의 일부를 무대에 올렸고, 1950년에는 국제오페라사가 주10의 「카르멘」을 공연했다. 이후 김학상 주도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이 중심이 된 서울오페라단, 이인범, 오화섭, 황병덕을 중심으로 한 한국 오페라단, 한경진을 단장으로 하는 푸리마오페라단, 서영모를 단장으로 하는 고려오페라단, 그리고 김창배를 단장으로 하는 부산오페라단 등이 국립오페라단 조직 이전까지 활약했던 오페라단이다.

1962년 국립극장 산하에 국립오페라단이 조직되어 국가 예산으로 오페라를 제작할 수 있게 되면서 오페라 운동이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국립오페라단은 그해 4월 주11 공연으로 장일남의 「왕자호동」을 무대에 올렸다. 국립오페라단 창단으로 민간 오페라단의 활동은 다소 위축되었으나, 1968년 김자경오페라단이 조직되어 국립오페라단과 더불어 오페라 공연을 주도하였다. 1970년 대한오페라단이 부활되어 활동하다가 해체되었고, 1975년에는 김봉임에 의하여 서울오페라단이 창단되었으며, 1985년에는 서울시립오페라단이 조직되었다. 현재는 각 지역별로 다수의 오페라단 창단되어 오페라 공연이 활발하게 개최되고 있다.

한국인 작곡가에 의해 창작된 오페라 공연의 효시는 1950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주최로 공연한 현제명의 「춘향전」이다. 1948년 한국 음악가들의 손으로 제작한 첫 번째 오페라가 공연된 지 단 2년 만에 한국 오페라가 창작되어 공연되었다는 점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후 김대현의 「콩쥐팥쥐」(1951), 현제명의 「왕자 호동」(1954), 장일남의 「왕자 호동」(1962)과 「춘향전」(1966), 김달성의 「자명고」(1969), 장일남의 「원효대사」(1971), 박재훈의 「에스더」(1971), 홍연택의 「논개」(1975), 김동진의 「심청전」(1978) 등이 발표되었다. 1980년대 이후에는 한국 오페라의 창작이 급속도로 증가하여 2023년 현재까지 200여 편이 넘는 한국 오페라가 발표되었다.

한국 오페라 창작 공연의 역사는 크게 다섯 시기로 나뉜다. 제1기는 주12(19501961년)로, 한국 작곡가에 의한 오페라가 처음 만들어지고 그 명맥을 유지하는 시기이다. 제2기는 ‘성장기’(19621982년)로 국립오페라단과 민간 오페라단인 김자경오페라단이 창단되면서 한국 오페라가 꾸준히 제작되기 시작한 시기이다. 제3기는 ‘도약기’(19831992년)로 한 해에 두세 편 이상의 한국 오페라가 창작‧공연되면서 한국 오페라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시기이다. 제4기는 ‘전문기’(19932008년)로 오페라 전문극장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와 대구오페라하우스가 개관되고 오페라 전문 인력이 증가하면서 전문성을 갖추게 되는 시기이다. 제5기는 ‘성숙기’(2009년~현재)로 한국 오페라 공연 횟수가 급증하고 오페라 전문 인력을 길러내는 시스템이 정착되는 시기이다.

한국 오페라 작품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요인으로는 과거에는 서울을 중심으로 한국 오페라 운동이 일어났다면, 이제는 지방자치단체의 오페라 창작 지원을 넘어서서 각 지역의 오페라단들이 자신의 지역적 특성을 가진 오페라들을 자체적으로 창작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 오페라의 확산이라는 측면에서 매우 긍정적이며, 더불어 한국 오페라의 양적 · 질적 성장에 큰 밑거름이 되고 있다. 이외에도, 오페라 전문 대본가 및 작곡가 육성 시스템이 정착되고, 영상 유통 시스템이 정착되는 등 한국 오페라 발전의 요인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참고문헌

단행본

이유선, 『한국서양음악백년사』(음악춘추사, 1985)
전정임 외, 『한국오페라 1950-1922 (1권~3권)』(충남대학교출판문화원, 2023)
한국오페라50주년 기념축제 추진위원회 편, 『한국오페라50년사』(세종출판사, 1998)
한국오페라60주년 기념사업 사무국 편, 『1998~2007 한국오페라10년사』(한국오페라6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 2008)
한국오페라70년사 발간위원회 편, 『한국오페라70년사』(리음북스, 2018)

논문

김호연, 「한국 근대 악극 연구」(단국대학교 박사학위논문, 2003)
주석
주1

가벼운 희극에 통속적인 노래나 춤을 곁들인 오락성이 짙은 음악극. 18세기 무렵에는 소규모의 오페라였으나, 19세기 중엽부터 파리와 빈을 중심으로 현재와 같은 형태로 바뀌었다. <천국과 지옥>, <보카치오>, <박쥐#GT#따위가 유명하다. 우리말샘

주2

악극을 공연할 목적으로 모인 연극 집단. 우리말샘

주3

주세페 포르투니노 프란체스코 베르디,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1813~1901). 이탈리아 가극의 성악적 장점을 활용하고, 화려한 선율과 관현악의 극적인 진행 따위의 수법으로 이탈리아 가극 최대의 작곡가가 되었다. 작품에 <리골레토>, <아이다>, <춘희#GT#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4

이탈리아의 베르디가 1853년에 작곡한 3막 4장의 오페라. 프랑스의 작가 뒤마(Dumas, A.)의 소설 <춘희(椿姬)>를 소재로 한 작품으로, 1853년에 베네치아에서 초연되었다. 우리말샘

주5

17~18세기 근대 유럽에서, 고대 그리스ㆍ로마의 예술 작품을 모범으로 삼아, 단정한 형식미를 중시하며 조화ㆍ균형ㆍ완성 따위를 추구하려는 창작 태도. 문학에서는 프랑스의 라신, 영국의 드라이든, 독일의 괴테 등이 대표적이고, 미술에서는 다비드, 앵그르 등이 대표적이며 음악에서는 하이든, 모차르트 등이 대표적이다. 우리말샘

주6

꿈이나 공상의 세계를 동경하고 감상적인 정서를 중시하는 창작 태도. 우리말샘

주7

비극적인 내용의 정통 가극. 영웅 이야기나 신화 따위에서 소재를 따 왔으며, 화려한 아리아와 레시터티브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말샘

주8

노래 외에 대사와 경쾌한 음악을 수반하는, 희극적이고 익살스러운 내용의 가극. <피가로의 결혼>, <세비야의 이발사#GT#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9

샤를 프랑수아 구노, 프랑스의 작곡가(1818~1893). 가극 <파우스트>, <로미오와 줄리엣#GT#따위로 프랑스 가극에 신국면을 전개하였다. 화려하면서도 감미로운 선율이 특징이다. 작품에 가곡 <아베 마리아>가 있다. 우리말샘

주10

조르주 비제, 프랑스의 작곡가(1838~1875).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국민 오페라의 확립에 노력하였다. 작품에 <카르멘>, <아를의 여인#GT#따위가 있다. 우리말샘

주11

단체를 새로 만듦. 우리말샘

주12

새로운 시대나 새로운 문화 운동 따위가 시작되는 시기.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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