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비로자나불좌상의 좌·우로 노사나불좌상과 석가불좌상이 한 폭에 배치된 비로자나삼신불 괘불탱이다. 이 거대한 삼신불좌상을 중심으로 상·하단부에는 조그맣게 묘사된 수많은 권속이 배치되었다. 1650년(효종 1)에 경잠(敬岑), 화운(華雲), 응열(應悅) 등 8명의 화원(畵員)이 그렸다. 응열은 공주 신원사(新元寺) 노사나괘불탱(1644년)과 예산 수덕사(修德寺) 노사나괘불탱(1673년)의 제작에도 참여한 우두머리 화원이다. 이 3점은 모두 충청남도 지방의 비로자나삼신불 신앙에 근거한다. 1771년에 화원인 쾌성(快性), 법징(法澄)에 의해 보수되었고 1976년에 일부가 수리되었다. 한편 괘불탱을 조성할 때 필요한 물품 목록이 기록된 화기(畵記)는 당시의 재정 사정을 알려주고 있다.
삼신불의 두광(頭光: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 주위로 상단부에는 8구의 보살 및 범천과 제석천, 제자상과 신장상 등이 배열되었다. 하단부에는 문수보살, 보현보살, 사천왕, 사리불(舍利弗)이 일렬로 배치된 상·중·하의 3단 구도이다.
삼신불은 키 모양의 광배(光背: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와 낮은 대좌(臺座), 천개(天蓋)를 갖추었다. 얼굴은 내려온 눈썹과 올라간 눈, 짧은 인중, 작은 입이 묘사된 둥근 모습이다. 그리고 통견(通肩: 어깨에 걸침)의 법의(法衣: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를 걸쳤으며 발목에 레이스(lace) 같은 장식이 있다. 불신(佛身)에 비해 큰 얼굴과 큼직한 손, 좁은 어깨는 불균형하지만 무릎 너비가 넓어 안정감이 있다.
비로자나불과 석가불의 머리에는 초승달 모양의 중앙계주(中央髻珠)와 기둥 모양의 상투 같은 육계(肉髻: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에 정상계주(頂上髻珠)가 장식되었다.
왼손이 오른손을 감싼 지권인(智拳印)의 손 모양을 한 비로자나불의 좌·우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각기 여의(如意)와 연봉오리를 들고 서 있다. 비로자나불좌상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연꽃 위에 무릎 꿇고 등을 보인 보살형 사리불의 청법(請法) 장면은 1649년에 제작된 충청북도 보살사(菩薩寺) 영산회괘불탱과 비교된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 왼손은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은 내리어 땅을 가리키는 손 모양)의 석가불좌상 앞에는 용(龍)과 여의주(如意珠)를 든 남방천왕과 보탑(寶塔)과 당(幢)을 든 서방천왕이 서 있다.
육중한 보관(寶冠)을 쓰고 전신에 영락(瓔珞: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을 두른 노사나불은 갸름한 얼굴에, 두 손을 어깨 높이로 든 설법인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이 앞에는 북방천왕과 동방천왕이 각기 비파(琵琶)와 칼[劍]을 들고 있다.
상단부에는 홍색 두광을 지닌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구름 위에 서 있다. 천의(天衣: 천인(天人)이나 선녀의 옷)가 휘날리는 동적인 자세의 대세지보살과 금니(金泥) 문양으로 채워진 가사(袈娑)를 입은 나한, 입상과 좌상 등의 다양한 자세의 시방제불(十方諸佛)이 하늘을 장엄하고 있다. 적색과 녹색 외에도 황색, 백색, 청색, 검은색 계열이 조화된 밝은 화면과 광배의 문양 등이 화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