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7년(영조 43년) 작. 모시 바탕에 채색.
화기에는 ‘開心寺大雄殿阿彌陀後佛幀(개심사대웅전아미타후불탱)’이라 적혀 있다. 그러나 그림의 내용은 아마타불화 중에서도 ≪관무량수경 觀無量壽經≫의 내용을 도상화한 16관경변상도임을 알 수 있다.
이 그림은 일반적인 아미타설법도(예배도)와는 다르다. 화면이 상·하단으로 나누어진다. 상단은 16관경변상도이고, 하단은 16관경 가운데 제15중품의 설법 장면만을 따로 확대한 특징적인 배치 구도를 보이고 있다.
더 세분하자면, 아래 구름 밑으로 또 하나의 구획이 나누어진다. 여기에 16관경변상도 중의 일부분을 확대한 것으로 불·보살·제자·속중(俗衆)으로 보이는 무리들이 찬탄하는 모습을 확대해서 그렸다.
결국 크게는 두 부분, 작게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그려졌다. 다른 16관경변상도(일본 지은원 소장)의 배치 구도와 비교하면, 일상관(日想觀)이 생략되는 등 16관을 모두 표현하지 않았음은 물론, 삼배구품왕생(三輩九品往生)의 장면 중 유난히 제15중품을 크게 묘사하였다.
이는 작자 나름대로 변형시켜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표현 능력에서 전문적인 장인이 아닌 지방에 거주하는 화공이 쉽게 표현하고자 하였으나 기술적인 한계에 부딪힌 것이 아닌가 한다.
화면 중앙의 설법 장면은 아미타삼존좌상을 중심으로 수많은 보살과 제자, 범천과 제석천·사천왕 등이 에워싼 반원형 구도이다. 군도식 배치 구도라는 점만 배제한다면 조선시대 초기의 작품인 수종사금동불감불화(水鐘寺金銅佛龕佛舖, 1459∼1493년)의 구도와 같다.
본존불(本尊佛)은 높은 육계(肉髻)에, 중앙 계주(中央髻珠)와 정상 계주(頂上髻珠)가 모두 표현된 두부(頭部)를 가졌다. 그리고 상체·하체의 세 부분은 사각형적인 형태로 움추린 듯한 자세이다.
특히, 평판적인 가슴에 표현된 승각기를 묶는 금구(金具) 장식은 1465년경의 관경변상도(일본 지은원 소장)의 본존불이나 1781년의 쌍계사아미타극락회상도의 본존불에도 나타나는 것이다.
14세기 고려 불보살상에 크게 유행하던 승각기 장식이 조선시대 전·후기의 불화를 통해 간혹 재현되는 점이 흥미롭다.
보살상은 전반적으로 영락(瓔珞 : 구슬을 꿰어 만든 장신구) 장식이 억제되었다. 그러나 배 부근에 큼직한 둥근 구슬이 강조된 점은 후기 보살상의 특징과 같다.
차분하게 정리된 필선의 이 불화 역시 적색과 녹색이 주로 사용되었으나 황색도 애용되었다. 이 그림은 조선 초기의 관경변상도와 비교하여 조선 후기의 특징도 뚜렷이 나타난 희귀한 예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아미타불화는 극락전이나 아미타전에 모셔지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화기에서 보다시피 대웅전에 아미타후불탱화를 봉안한다고 분명하게 적은 점으로 미루어 이 아미타후불탱화(관경변상도)는 아마도 대웅전이 건립된 뒤 이곳에 봉안된 것 같다.
다시 말해서, 알맞은 장소에 알맞은 내용을 지닌 3단(三壇) 탱화가 배치되다가 사원의 규모가 작아지면서 한 전각에 모두 안치되거나 전각의 명칭과 다른 내용의 탱화도 봉안되기 시작하는 경우에 속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