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5년(정조 9) 왕명에 의하여 송시열(宋時烈)을 제향하기 위하여 여주의 남한강변에 세웠다. 그 해에 사액되었는데 이 때는 송시열에 대한 존칭인 대로(大老)의 명칭을 붙여 ‘대로사’라고 하였다.
앞서 송시열은 여주에 머물 때마다 이 곳에서 영릉(寧陵: 효종의 능)을 바라보고 통곡하며, 또 후진들에게 북벌의 대의를 주장하였다고 한다. 후일 정조가 영릉에 행차하다가 이 말을 전해듣고 수행한 김양행(金亮行)에게 이 사우를 세우게 하였으며, 또 친히 비문을 지었다.
여기에는 남인을 등용함으로써 노론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던 정조가 노론이 받드는 송시열을 높이고, 그의 문집을 왕명으로 간행하게 하는 등의 특별배려를 베풂으로써 노론의 불만을 달래려고 한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었다.
1972년 경기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건물구조는 강당과 사묘, 관리인이 거주하는 부속건물로 이루어져 있어 비교적 간단한 규모이다. 출입문인 장인문이 서쪽으로 나 있으며, 사묘 또한 서쪽을 향하고 있는데, 이는 사우로부터 서쪽 방향에 있는 효종의 영릉을 바라보기 위한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이 전국의 서원과 사우에 대한 훼철를 단행할 때 전국에 송시열을 제향하던 서원 및 사우가 44개소나 되던 것이 모두 헐렸으나 오직 이 대로사만은 ‘강한사’로 이름을 바꾸어 남게 되었다.
서적이나 기타 목판 등이 산실되고, 겨우 외모만 갖추고 있을 뿐이다. 정조 때 사액시 대제학인 김종수(金鍾秀)가 쓴 ‘대로사(大老祠)’의 현판이 현재 사묘 안에 보관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