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사호(士浩), 호는 목계(木溪) · 동고(東皐). 강우덕(姜友德)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집의 강숙경(姜叔卿)이고, 아버지는 강인범(姜仁範)이며, 어머니는 호군 여인보(呂仁甫)의 딸이다. 김종직(金宗直)의 문인이다.
1483년(성종 14) 생원 · 진사 양시에 합격하고, 1486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호당(湖堂)에 들어가 사가독서함으로써 문명을 떨쳤다. 1498년(연산군 4)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인이라 하여 장류(杖流)되었다가 얼마 뒤 풀려났다. 그뒤 연산군에게 문장과 시로써 아부하여 그 총애를 받고 도승지에 올랐다.
1506년 중종반정을 주동하던 박원종(朴元宗) 등이 죽이려 하였으나, 영의정 유순(柳洵)의 주선으로 반정군에 나가 목숨을 빌고 반정에 가담하여, 그 공으로 병충분의결책익운정국공신(秉忠奮義決策翊運靖國功臣)의 훈호(勳號)를 받고 진천부원군(晉川府院君)에 봉해졌다.
그뒤 대제학 · 공조판서를 거쳐 1512년(중종 7) 한성부판윤이 되고, 이어 숭록대부에 올라 우찬성 · 판중추부사에까지 이르렀다. 시문에 뛰어나 김일손(金馹孫)에 버금갈 정도로 당대에 이름을 떨쳤다. 그러나 명리를 지나치게 탐냈다.
특히 연산군 말년 애희(愛姬)의 죽음을 슬퍼한 왕을 대신하여 궁인애사(宮人哀詞)와 제문을 지은 뒤 사림으로부터 질타의 대상이 되었고, 반정 후에도 홍문관으로부터 폐조의 행신(倖臣)이라는 탄핵을 받았다. 저서로 『목계일고』가 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