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 담양 출신. 학생비밀결사인 무등회(無等會)를 조직, 독립운동을 전개하다 옥사한 애국지사이다. 1938년 광주서중학교 3학년 재학중 학우 주만우(朱萬尤)·유몽룡(劉夢龍) 등과 함께 서중독서회(西中讀書會)를 조직하여 배일운동에 참가하였다.
1940년 주하준(朱夏俊)·나금주(羅金柱)·기원흥(奇源興)·신균우(申均雨) 등의 학생들과 기존의 독서회를 무등회로 개칭하고 조직을 확대하였다. 그러나 1942년 무등회의 조직과 활동이 일본경찰에 발각됨으로써 검거되어 1년여간 구금당하였다.
그 뒤 1943년 7월에 광주서중 학생들이 학병지원반대·창씨개명반대·일어상용반대·징병제도반대 등을 내걸고 동맹휴학에 들어가자 무등회의 조종이라는 이유로 다시 일본경찰에 검거된 뒤 심한 고문과 옥고로 1944년 4월 광주형무소에서 죽었다.
1980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