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출신. 기독교 신자로 일진회의 망국적 행위에 분개하던 중, 1909년 9월 하순 평양에 있는 박태은(朴泰殷)의 집에서 미국 유학 시절에 친교하였던 이재명(李在明)·이동수(李東秀)·김정익(金貞益)·조창호(趙昌鎬)·전태선(全泰善)·이응삼(李應三)·오복원(吳復元)·김용문(金龍文) 등과 이완용(李完用)·이용구(李容九)·송병준(宋秉畯) 등을 암살하기로 모의하였다.
이동수·이재명과 함께 1차로 이완용을 처단하기로 하고 거사를 위하여 상경, 기회를 엿보던 이들은 그해 12월 20일 김용문으로부터 이완용 등 매국각료가 이달 22일 벨기에 왕 레오폴드 2세의 추도식에 참례하기 위해 명동성당에 나간다는 연락을 받고 무기를 준비하여 그날 명동성당 정문 앞에 이르러, 이동수와 김병록은 은신하여 외부동정을 살폈고, 이재명은 군밤장수를 가장하면서 이완용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11시 30분 이완용이 추도식을 끝내고 인력거를 타고 막 돌아가려고 할 때 이재명이 이완용을 찔렀으나 성공하지 못하였다. 사건 후 이재명과 함께 체포되어 15년의 징역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1963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