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례문은 궁궐의 문이기도 하지만, 신라 하대에는 ‘건례선문(建禮仙門)’이라 하여 국왕에게 봉사하는 관료군을 말하는 용어로 사용된 것으로도 보인다.
신라 하대 최치원(崔致遠)이 찬술한 『숭복사비(崇福寺碑)』에 의하면 원성왕릉의 조영과 곡사(鵠寺)를 옮겨 짓는 공사 담당자를 임명하면서 ‘단원(端元)·육영(毓榮)·유영(裕榮) 등 종실 3량(宗室三良)을 건례선문에서 발탁하고, 현량(賢諒)·신해(神解) 등 석문 2걸(釋門二傑)을 소현정서(昭玄精署)에서 천거토록 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인재를 건례선문에서 뽑았다(擇人龍於建禮仙門)’는 데서 지금까지는 이를 예부(禮部)의 별칭으로 추측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숭복사 건립은 속감전(俗監典)·도감전(道監典)의 체계에서 운영되었는데, 특히 속감전에 속하여 공사를 담당한 인물들은 모두 왕의 종친이었다.
물론 국가 또는 왕실의 발원으로 이루어진 불사에는 왕실의 인물이 수조관(修造官)으로 참여하게 마련이겠지만, 이들 불사의 조영에 참여한 관료들의 관직을 살필 때, 여기에서의 건례선문은 국왕에게 봉사하는 관료군을 아화(雅化)한 명칭이라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