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래 승정(僧正)은 중국 남조계통의 승관명이다. 중국 남조에는 중앙과 각 주(州)에 승정이 있었다. 그러나 중앙의 승정은 실권이 없고 유력한 주의 승정이 전권을 장악해 그 지역의 사원을 통할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백제가 중국 남조의 승관제도를 받아들여 이를 시행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7세기 초엽 일본에 건너간 관륵(觀勒)이 일본의 초대 승정(僧正)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미루어 짐작된다.
그러나 군승정에 관한 분명한 기록은 헌강왕 10년(884)에 김영(金穎)이 찬술한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 寶林寺普照禪師彰聖塔碑>에서 처음으로 보인다.
거기에는 “대중 13년(859) 왕이 다시 명을 내려, 승려와 속인 사신인 영암군(靈巖郡) 승정(僧正) 연훈법사(連訓法師)와 봉신(奉宸) 풍선(馮瑄) 등을 보내어 가지산사(迦智山寺)로 옮겨 거처할 것을 청하였다.”고 씌어 있다.
여기에서 영암군 승정 연훈법사가 왕의 명을 전하는 것으로 보아 중국 남조의 것과는 차이가 있다. 오히려 기왕의 신라 지방승관직인 군통(郡統)과 같은 직무를 수행하고 있어 군통을 이 지역에서 특이하게 일컬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곧, 군승정의 직함을 가진 연훈법사의 활동시기가 9세기 중엽이고, 그 이름이 보이는 <보림사보조선사창성탑비>의 소재지가 전남 장흥 지방이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 신라 하대 지방분권적 상황 아래 있었던 이 지역 불교계에서 기왕의 신라 지방승관직인 군통을 옛 백제 때의 명칭인 군승정으로 일컬은 듯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