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사찰 내 삼강직(三綱職)의 하나이다. 본래 중국 양(梁)○진(陳) 교체기에 소현조(昭玄曹)에 속했던 승직(僧職)이었다. 우리 나라 문헌에는 보이지 않고 신라 중고기 <무술오작비>(578)의 ‘都唯那’를 비롯해 나말여초의 금석문에 ‘都維那’(황룡사구층목탑찰주본기·오룡사법경대사비·정토사법경대사비·각연사통일대사비), ‘都唯那’(도유나, 봉암사지증대사비), ‘都唯乃’(도유내, 상원사종명), ‘都乃’(도내, 연지사종명) 등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중고기와 중대의 금석문에서는 ‘공사감독’이라는 의미로서 나타날 뿐 승직과 관련된 사료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삼국사기≫○≪삼국유사≫의 승관(僧官) 관계 기사에서 도유나랑(都唯那娘)을 두었고, 진흥왕 때에 보량법사(寶良法師)를 대도유나(大都唯那)로 삼았다고 하였다.
이들 이름이 도유나란 이름과 관련될 것이라는 점과 <무술오작비>에서 승려로 보이는 도유나란 존재를 확인할 수 있으므로, 중고기의 중앙 승직 가운데 ‘도유나랑-대도유나-도유나’ 등의 체계가 있었을 것으로 막연하게 추측될 뿐이다.
그러나 신라 하대에 이르러 각 사찰 내에 삼강직이 설치되면서 도유나가 설치되었다. 중국의 경우 삼강직으로서의 도유나는 교종사원에 설치되었고, 반면에 선종사원에는 유나가 두어졌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경우 나말여초에 교종사원과 선종사원 모두 도유나·유나가 함께 두어져 중국과는 차이가 있다.
따라서 나말여초 삼강직으로서의 도유나는 유나의 상위직으로서 그들을 거느리고 사찰내의 업무를 총괄하고 불사(佛事)를 주관하거나 감독하는 임무를 띠었던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