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2.4㎝.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1915년에 충청북도 충주시 노은면에서 발견되었는데, 삼존 중의 본존불상은 없어졌으며, 좌우에 협시보살상은 광배와 함께 주조되었기 때문에 남아 있다.
이 광배의 윗부분은 불꽃무늬가 선각(線刻)으로 표현되었고, 그 사이에 세 화불(化佛)이 연화대좌 위에 상반신을 드러내고 앉아 있다. 가운데 부분은 여덟 개의 연꽃잎을 중심으로 네 개의 동심원으로 돌려진 두광과 거기에 이어져 내린 선으로 신광이 약간 도드라지게 표현되어 있다.
광배 양끝에 부조로 붙여져 있는 보살입상은 그 세부 표현이 자세히 보이지는 않으나 머리 부분에는 3면의 화관을 쓴 것 같으며, 천의(天衣)는 양어깨에서 좌우로 늘어지고 치마 위에서 대각선으로 교차되어 있다.
광배의 뒷면에는 “건흥(建興) 5년 병진년에 불제자 청신녀(淸信女) 상부아암(上部兒庵)이 석가모니상을 만들었는데, 세상에 다시 태어나도 불법을 듣기를 원하며 일체중생이 모두 이와 같이 바란다.”라는 내용의 명문이 있다.
명문에 보이는 ‘건흥’이라는 연호는 삼국시대의 어느 나라의 것인지 기록으로는 알 수가 없으나, 그 다음에 나오는 ‘병진년’은 이 상의 조각 양식이 대체적으로 6세기 양식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536년이나 596년일 가능성이 높다.
이 상은 그 출토지가 충청도라는 점에서 오랫동안 백제시대의 상으로 추정되어 백제 위덕왕 43년인 596년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최근에는 그 출토지인 충청북도 충주 지역이 한때는 고구려 땅이었던 점과, 명문에 ‘건흥’이라는 연호를 쓰거나 문구의 사용법이 고구려 땅에서 출토된 광배와 비슷한 점에서 이 광배 역시 제작자가 고구려인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이 상의 연대를 536년으로 볼 경우 ‘연가7년기미년명금동불입상’에서 보이는 연호와의 선후 관계에 문제가 있어 596년이라는 설이 유력시되고 있다.
대체로 광배 및 보살상의 양식은 6세기 후반의 불상인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국보, 1962년 지정)이나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국보, 1962년 지정)과 비교되며 양쪽 보살협시상은 원오리 이조보살입상, 부여 군수리 금동보살입상(보물, 1963년 지정), 국립중앙박물관 금동보살입상 등 현존하는 삼국시대의 6세기 보살상들과 더불어 중국의 6세기 초기의 북위(北魏) 양식과 연관 지어 비교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