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본존불 3m, 좌협시 2.35m, 우협시 2.3m. 1985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백률사(栢栗寺) 위쪽의 금강산(金剛山) 정상 부근에 있는 높이 3.4m, 너비 4.9m 크기의 동북향의 암면에 새겨져 있다.
손상된 부분이 많고 선각(線刻 : 선으로 새김)도 얕아 구체적인 특징을 파악하기 어렵다. 삼존은 얼굴 부분만 얕게 부조(浮彫 : 돋을새김)하고 나머지는 모두 선각하였다. 거대한 본존에 비해 협시는 옹졸하게 배치되어 불합리한 구도를 나타낸다.
본존은 방형(方形 : 네모반듯한 모양)의 신체 구조에 살이 쪄서 비만한 모습이다. 방형의 얼굴은 한 줄 선으로 새긴 두 눈의 눈초리가 위로 치켜 올라가 침잠한 표정을 지었다.
머리는 육계(肉髻 : 부처의 정수리에 있는 뼈가 솟아 저절로 상투 모양이 된 것)의 윤곽이 불분명하다. 그리고 윤곽이 불분명한 두 귀도 지나치게 커서 마치 모자를 쓴 듯 불합리하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뚜렷하다.
법의(法衣 : 중이 입는 가사나 장삼 따위의 옷)는 통견의(通肩衣 : 어깨에 걸쳐진 옷)이다. 왼쪽 어깨에서 내려오는 옷자락은 가사 끈으로 묶어 드리웠으며 가슴 사이로 비스듬히 새겨진 내의의 윤곽이 보인다.
우람한 양 무릎 위로 대의(大衣 : 설법을 하거나 걸식을 할 때 입는 중의 옷) 자락이 유려하게 흘러내졌다. 하지만 양팔은 마멸이 심해 수인(手印)이 불분명하다. 그러나 좌우의 협시 보살상은 보관 정면에 각각 화불(化佛)과 정병(淨甁)이 표현되어 있어 이 삼존불은 아미타삼존불(阿彌陀三尊佛)로 확인된다.
본존 여래좌상의 오른쪽 협시 보살상은 얼굴과 몸 전체를 본존 쪽으로 돌리고 꿇어않아 마치 본존을 향해 공양하는 자세로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발꿈치 쪽으로 내리고 왼손은 가슴 위로 들었지만 지물(持物)은 확인할 수 없다.
오른쪽 겨드랑이에서 왼쪽 어깨 쪽으로 비스듬히 걸쳐진 천의(天衣 : 천인(天人)이나 선녀의 옷) 자락이 표현되었고, 복부에도 나부끼는 옷자락이 보인다.
무릎 아래로 단판의 연꽃무늬가 보이나 대부분이 묻혀 있다. 보관은 화려한 꽃무늬가 장식된 화관(花冠)으로 중앙의 솟을장식[立飾]에 보병(寶甁)이 새겨져 있다. 관 띠 밑으로 머릿결의 윤곽이 뚜렷하다.
광배(光背 : 회화나 조각에서 인물의 성스러움을 드러내기 위해서 머리나 등의 뒤에 광명을 표현한 둥근 빛)는 이중의 원형 두광(頭光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이다.
본존의 왼쪽 협시 보살상은 얼굴과 신체 윤곽선으로 보아 몸을 본존 쪽으로 돌린 모습이지만 보관 일부를 제외하고는 모두 마멸되어 세부 특징을 확인할 수 없다. 보관 중앙에 화불(化佛)이 새겨져 있으며 광배는 원판을 포갠 듯한 이중의 원형 두광이다.
이 처럼 본존을 향해서 서로 다른 자세의 협시가 배치되는 율동적인 구도의 마애불은 남산 삼릉계(三陵溪)의 선각삼존불에서 비롯된 것이다.
완전히 선조화된 조각 기법과 대형화된 신체에 비해 느슨하고 섬약한 선 그리고 침잠한 얼굴 표정 등에서 조성 시기는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삼존이 새겨진 암벽 위 좌우에 목조 가구용의 방형 구멍이 남아 있고, 유적 주변에는 기와편이 흩어져 있다.
이 유적은 금강산 입구에 위치한 굴불사지(掘佛寺址) 발굴 조사에서 수습된 ‘東寺’라는 명문을 근거로 ‘동암(東庵) 마애불’로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앞으로 더 연구해야 할 과제이다.